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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재구성하기
최 수 호 현대행동심리연구소 소장
작성 : 2015년 11월 04일(수) 17:39 가+가-

진솔한 삶을 살아가려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참 마음과 연결된 참자아의 정체성을 회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겪고 있는 고통과 솔직히 대면하고 내면의 불안과 수치심을 수용하는 자아개방형이 되어야한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실현할 줄 알아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에게 인정받고 남을 기쁘게 하려고 거의 맹목적으로 질주하면 허상의 자아에 집착한 삶을 멈추는 지혜를 발휘는 사람으로 변신되어야 한다.
올바른 삶을 영위하려면 자기 내면에서 요동치는 부끄럽고 고통스런 수치심을 올바로 바라보고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걸림이 없는 삶을 살아갈 줄 알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내면에서 느껴지는 양심의 상처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직접 대면하게 되면 상처 입은 자아에 대한 자비심의 발동으로 자신의 취약성에 유연해지면서 속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자아를 맞이하는 지혜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 인생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통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면 커다란 좌절을 겪으면서도 심오한 영적 통찰과 자기 개방의 계기를 자연스럽게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자기 나름대로 믿고 살아왔던 삶의 방식의 근간을 이루었던 모든 신념이 깨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여태껏 잘 살아가는 규범으로 여기던 신념체계에 의지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틀을 분명히 깨닫기 시작하면서 놀랍도록 구태의연한 삶의 방식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런 경험을 하다보면 외부의 배척 때문에 자신의 삶이 고달픈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얼마나 배신하면서 살아왔기에 자기 삶이 괴로운가를 바라보는 혜안이 확장되어간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어떤 공격에 직면하더라도 자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떠오르는 참자아적인 대응책을 접수하면 세습적인 습관적 방어 전략이 무너지는 분명한 현상에 경탄하는 자신에게 환희심을 느끼게 된다.
특히 극심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고통의 질곡에 빠져 자기 인생이 바닥을 칠 때 무가치한 고통이 드러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가치 있음을 증명해보이려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온전한 나로 살지 못한 삶에 익숙해있었음을 근본적으로 수용하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이처럼 외부에 잘 보이고 인정받으려는 허상의 자아를 지켜내는데 수년 동안 소중한 순간들을 희생해왔음을 명확히 깨달아야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불완전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스스로 잠재능력을 제한해버리는 한정된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는 단지 마음의 걸림 들을 올바로 인식하여 자기 내면의 상처들을 근본적으로 수용해야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잠재능력을 신뢰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면의 상처를 근본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비자아적인 행위를 체념해버리거나 방종하거나 변명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들려주는 참자아를 바로보고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내면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되는 참자아를 수용하면 세상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동기를 만들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오게 한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자아를 발견하고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신하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내 방식을 지켜내야 해!”라고 결론을 내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원적 수용이 올바로 이루어지려면 있는 그대로인 자신을 정확히 그대로 두기로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의식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바라보고 스스로 번성하는 지혜의 길을 가도록 자아의 진로를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자기 변신은 뿌리 깊은 습관들이 근원적 수용과 만나서 참자아를 올바로 깨닫고 잘못된 습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내는데 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할 때만이 자신에게 변화를 줄 수 있으며,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용만이 지속적인 변신의 길로 가는 진정한 변화의 수단인 것이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수용한다함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정의하거나,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자신을 규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능력과 한계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할 뿐이며, 운명 앞에 스스로 절망하여 삶을 체념케 하거나, 온전히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포기케 하거나, 스스로 자립할 자유를 잃은 엄청난 슬픔을 부정하는 것을 의도하지도 않는다.
자기 수용은 다만 자신의 삶에 내포된 끝없는 창의성과 가능성에 대한 변화의 진실을 받아들여 활기차고 의욕적인 희망으로 스스로의 삶을 재구성토록 개방하려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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