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9월 평양장로회 신학교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로 출범한 한국교회 최대 교파의 장로교가 금년 9월로 100년을 맞았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본래 하나의 교단, 하나의 교회였다. 미국 북 장로교회의 파송선교사로 언더우드 목사가 1885년 부활절인 4월5일에 인천 제물포 항구에 도착함으로써 본격적인 한국의 장로교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보다 일 년 전인 1884년에는 알렌선교사가 파송되어 의료선교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1901년 9월에는 선교사 25명이 한국인 장로들과 함께 장로회공의회를 조직하였는데 이는 최초의 장로회 치리기관이었다.
그 산하에는 각 지역의 대리회를 두었는데, 경기충청대리회, 평안남대리회, 평안북대리회,황해대리회, 함경대리회, 전라대리회, 경상대리회가 있었다.
이 대리회가 발전하여 1907년 9월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평양에 있는 장대현교회에서 조직되었는데, 이 때 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인 방기창, 서경조, 양전백, 한석진, 이기풍, 길선주, 송인서 등 7명을 안수하여 최초의 한국인 목사가 배출되었다.
그리고 이 독노회 기간 중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하였는데 이는 선교역사의 첫 장을 연 최초의 경사이기도 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의 대 각성운동과 1910년의 한일합방 등 영욕의 역사 속에서도 한국장로교회는 계속 부흥 발전하여 1911년에는 제5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대구에서 열렸는데 이 때 각 지역의 대리회를 노회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각 노회에서 선출된 총대 221명(선교사 44명, 한국목사 52명, 장로 125명)이 한 자리에 모여 제1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창립총회가 열려 초대 총회장에는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였던 언더우드 목사가 추대되었고 한국인 부총회장에는 길선주목사가 추대되었으며 이로써 조선예수교장로회 창립은 당회와 노회, 그리고 총회로 이어지는 장로교회 조직을 한국교회가 완전히 갖추었으며 중국 산동성에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목사를 각각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우리민족이 겪어야했던 비극적인 역사는 한국장로교에 엄청난 상처와 아픔을 주었다. 특히 민족운동, 독립운동과 민족계몽운동 등에 있어 기독교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이로 인해 일제로부터 끊임없는 박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8년 9월10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는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기독교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애국적 국가의식”이라는 명분을 내새워 신사참배를 공식 결의했다. 장로교회가 우상숭배를 정기총회에서 결의했다는 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이 후 1946년 6월 해방 이듬해에 열렸던 남부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고 다시 1954년 제39회 총회에서 다시 신사참배 결의를 재 취소한 후 참회기도회를 드렸다. 그러나 신사참배 문제로 인한 논란은 해방 이후까지 계속 이어져 한국장로교의 분열 역사의 발화점이 된 것은 실로 커다란 오명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제의 신사참배문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1952년 고신측이 분열되었고 자유주의 신학논쟁으로 인해 1953년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분열됐다.
한국장로교의 가장 큰 분열은 1959년 합동과 통합의 분열이다. 결국 1959년 제48차 총회에서 장로교는 WCC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갈라지게 되고 이것이 통합과 합동교단의 분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분열을 거듭하던 한국장로교는 현재 200여 교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한국장로교 총회역사 100년을 맞아 다시 본격적인 통합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금년 65회 총회를 맞이한 예장 고신은 1976년 분열됐던 예장 고려 측과 은혜와 사랑으로 감격적인 통합을 이뤄내며 42개 노회와 2,050여 교회 55만 성도 규모의 중대형교단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예장 백석과 대신측이 지난달 14일 통합총회를 열고 처음으로 협상을 시작한지 17년 만에 역사적인 통합을 완수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으로 교단이름을 정한 후 통합총회장에 장종현 목사를 추대해 7천여 교회가 소속된 한국교회 세 번째 대형교단으로 거듭났다.
이제 100회 총회를 마친 한국장로교회의 과제는 하나의 장로교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제가 남아있다.
특히 기독교의 65%를 차지하는 한국장로교부터 하나로 뭉쳐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로 남아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