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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왜 창조를 믿지 못하는가?
박성민 논설위원 편집국 국장 (진도 담당)
작성 : 2026년 10월 29일(목) 16:20 가+가-
현대인이 창조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무관심과 창조의 유일한 정보 제공처인 성경 지식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무관심의 주요 원인은 이론에 불과한 진화론을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창조와 진화는 양날의 칼이면서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진화는 창조의 특정 부분을 도려내어 진화를 짜맞추어 나가는 학문이다. 애초부터 생물의 핵심은 진화가 아닌 DNA의 프로그램대로 성장하고 퇴화 과정을 거쳐간다. 성장후 퇴화가 모든 생명체에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창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창조는 진화론에게 답하지 않았다. 창조는 사실이면서 진리이기에 그렇다. 본래부터 진리는 거짓에게 답하지 않는다. 그저 진리는 진리의 길을 갈 뿐이다. 창조 행위는 한번에 마무리됐다. 그러기에 창조를 증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우주만물이 창조의 목적대로 유지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창조는 입증력을 갖는다.
누구나 창조와 진화 여부를 알고자 한다면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양심이다. 모든 사람에게 작용하는 양심은 진화로 설명이 불가하다. 양심적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나보다는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에 양심은 자기 생존에 커다란 위협 요소가 된다. 진화의 목적과 상반된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양심은 퇴화되어야 할 기능이다. 양심적인 사람의 양심은 더 밝아진다. 양심을 속이는 일이 반복되면 양심은 퇴화가 아닌 무뎌진다. 양심의 법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에 새겨진 창조주의 율법이다.
칸트는 양심을 ‘내 안의 도덕 법칙’으로 단순한 교육이나 훈련에 의해 세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간의 이성이 보편적 의무를 따르게 되는데 그 기준이 바로 양심이다. 그래서 양심을 내안의 재판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양심은 하나님의 법이 인간 마음에 새겨진 흔적으로 사회가 타락해도 양심은 인간 내면에서 절대성을 증거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의 타락 정도에 따라 사회의 도덕 기준도 타락하지만 양심이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 있기에 타락의 폭은 항상 양심의 기준선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보편적 도덕이다.
성경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1장1절은 시공간의 창조를 의미하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 사실을 현재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인간조차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부분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지만 전체를 꿰뚫을수 있는 증거는 없다. 무에서 유의 창조는 단회에 그쳤기에 과학 실험처럼 재연이 불가하다. 창조의 특성이다.
1949년 일반상대성이론이 허용하는 새로운 시공을 발견한 과학자 쿠르트 궤델은 “모든 참인 명제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산술처럼 틀에 박힌 분야에 한정해서 모든 참인 명제를 증명하려 할지라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창조가 사실일지라도 증명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함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에덴동산의 실증, 아담과 하와의 실존을 입증한 유전자 추적, 노아 대홍수 심판을 입증한 방주의 아라랏산 실존, 바벨탑 위치 실존적 증거, 언어의 혼잡 이전의 인류 언어 등으로도 성경이 사실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중 하나는 선민 이스라엘의 존재다. 기원전 606년 나라가 멸망 당한후 AD70년에 로마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당해 성전이 불타고 수만명이 노예로 잡혀갔다. 135년 로마 하이드리안 황제때는 유대인을 전 세계로 이산, 디아스포라가 발생했다. 유대 민족은 고토에서 모두 쫒겨 나갔다. AD33년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면서 그 피값을 당시 죽인 유대인과 우리자손에게 돌리라는 외침대로 그대로 약1900년동안 문자그대로 이뤄졌다.
이스라엘은 2600년전 기록한 에스겔의 예언대로 인류의 마지막때인 1948년5월14일 고토 팔레스타인지역에서 독립했다. 성경 예언대로 멸망했고, 성경 예언대로 고토로 돌아와 독립한 세계 유일 국가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독립을 20세기 최고의 기적으로 꼽는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국가 존립 자체만으로 배후에 창조주가 실존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민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대인이 성경 기록대로 고토에 독립하지 못했다면 성경은 지구상에서 아마 사라졌을 것이다.
현대인이 창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조의 직접 증거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너무 많아서 일까?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창조의 기사를 일방적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고고학적이나 물리학적으로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있기에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의 사실여부를 확인후 믿을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성경은 인간을 향한 창조주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다. 무관심과 성경의 무지로 창조기사를 멀리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베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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