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나만 알던 세계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2월 20일(일) 16:54 가+가-
화순에는 샘이 많다. 그 중에서도 화순초등학교 가까이에 있는 옥거리샘은 어린 시절 자주 놀았던 장소인데, 유독 가마니아저씨가 인상 깊게 기억난다. 가마니아저씨란 흔하게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떠돌던 유언비어였던 것 같다. 늘 망태기를 등에 지고 한 손에는 집게를 든 사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체모와 왕초가 입을법한 누더기를 걸친 왜소한 외모에 흐리멍덩한 안광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기괴 그 자체였다. 헌데 이 사내는 옥거리샘에 자주 출몰했는데, 그가 나타날 때마다 저 멀리서부터 아이들이 ‘가마니아저씨다!’ 외치면서 흩어져 도망쳤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그에 대한 여러 소문 중에는 혼자 있는 어린 사내아이를 데려가서 만연산에서 키운다거나 그가 데려간 아이가 화순장에서 구걸하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둥 뜬소문들이었다. 이제와서 회상해보면 아마 그는 공병을 줍는 사내였을지도 모른다.
이 사내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지만, 같이 놀던 남동생은 전혀 기억하질 못하고 있고, 근처에 살던 친구는 망태기할배라며 회색 체모를 가진 노숙자로 기억하고 있으니 기억이라는게 참 믿을 것이 못된다.
한번은 이 사내가 나타났을 때 근처 구멍가게에 들어가서는 큰 난리가 난 것처럼 ‘가마니아저씨가 와요!’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다.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던 주인아줌마가 깔깔대면서 알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줬었는데, 아마 그 아줌마들에게는 또 다른 디테일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기억이란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 현상을 제멋대로 왜곡하고 편한 방식으로 단순화시킨다.
때문에 나는 이 기억이라는 단어를 언해교육봉사를 할 때 ‘주변을 내 방식으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객관적으로 실존하는 대상을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곧 기억이니 어떻게 본다면 세계의 자아화라는 서정시의 관계양상과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도 같다. 즉 기억이란 ‘나만 아는 세계’를 창조해내는 자아의 결과물인 것이다.
고사에 코끼리를 본 장님들 이야기가 있다. 한 장님은 다리를 만지고 기둥같이 생겼다, 한 장님은 코를 만지고 뱀 같이 생겼다, 귀를 만지고 부채같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그리고 신기하게 코끼리를 바라보는 중국 사람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천축 사람들은 또 어떻게 느꼈을까?
어떤 이는 장님들의 묘사를 들으며 그가 만진 부위와 비교하며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장님들이 일부를 만지곤 전부 아는 것마냥 주장하는 것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시(詩)를 접한 우리의 태도도 장님들의 코끼리 묘사를 들은 대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시의 감정선에 감탄하고 공감하고 어떤 이는 오그라든다며 비웃는다. 어떤 이는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분석하고 해석해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서정시는 일인칭인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세계를 지극히 개인의 감상, 감성으로 재해석하고 문자로 다시 옮기는 작업을 거친다. 그래서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화자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공감하지 못한다면 시가 상대의 공감능력을 끌어내지 못했거나 내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기억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내 기억을 남과 공유하기 위해서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여 공개한다 하더라도 남 또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억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인 ‘나’의 기억은 ‘남’의 방식으로 가공된 ‘남’의 기억이 될 뿐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 혹은 후천적으로 교육받은 습관으로 몸으로 체감하는 여행을 즐기거나 안락한 공간에서 책이나 영화를 즐기는 등 사람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경험을 쌓고 경험은 기억이 되어 자아에 영향을 끼친다.
어제 쓴 글을 오늘 읽으면 고칠 부분이 보인다. 고작 하루의 기억만으로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약간의 차이가 벌어진다. 누군가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사람은 항상 변화한다. 어린 시절 나는 연필을 쥘 때 연필심에 가깝게 아주 꽉 쥐고 사용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쯤에 문득 이 습관이 내 손을 아프게 한다는 생각에 조금씩 뒤로 쥐기 시작해서 이제는 대를 잡고 글을 쓰게 되었다. 연필심에 가깝게 쥐던 수많은 나날들의 경험이 기억으로 남아 언제든 변화할 계기를 마련했고, 중학교를 졸업할 쯤의 어느 날 스스로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