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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인간의 언어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2월 06일(일) 16:45 가+가-
고인류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이다. 그곳에는 수렵하는 인간의 오래된 모습이 나타나 있다. 아마 그 무렵쯤엔 나름대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체계가 있었을 것이다.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의사표시를 해야 하므로 손짓발짓을 넘어선 언어체계가 어느 정도는 갖춰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어는 집단사회에서 필수적인 소통수단이다. 힘 있는 자를 중심으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다. 즉 언어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부족의 남자들이 멧돼지나 사슴을 잡으면 얼마동안 식량 걱정을 안 해도 되니 기뻤을 것이다. 그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사냥감을 불에 구우면서 어깨를 맞잡고 춤을 추었을 것이다. 즐거운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무엇인가를 흥얼거렸을 것 또한 짐작이 간다.
그러나 어느 땐가는 슬픈 일도 있었을 텐데 부족 간의 전쟁에서 패해 절망적인 눈물을 흘리며 어떤 식으로든 슬픔을 표현했을 것이며 또 어느 땐가는 마을에 전염병이 들어와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 주술사가 액운을 물리치는 등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건·사고를 경험하며 부족들은 나름대로 생존방식을 터득했다.
오늘날 우리가 문학, 미술, 연극, 음악, 무용으로 분류한 예술 갈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체계화시킨 양식으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삶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체계적으로 발달한 것이다. 즉 사냥감을 잡아 와 즐거우니 몸을 흔들었던 율동이 발달해 무용이 되고, 기쁨을 주체 못 해 바위에 새긴 암각화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와 같은 원시미술이 되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예술의 기원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이처럼 문학이건 미술이건 간에 모두가 순수했다. 정직한 정서와 생각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형상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 순수한 정서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역사시대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언어가 탐욕스러워졌으니 오늘 우리가 내뱉는 언어는 참으로 불경스럽다. 더 많은 물질을 탐하고 더 높은 벼슬을 탐하고 더 빛나는 명예를 탐하니 참으로 오래전, 신화 같고 전설 같은 시대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언어는 정녕 회복하기 어려운 일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오늘날 신문, TV에서 보는 인간의 언어는 참으로 가증스러울 정도로 탐욕스럽다. 돈의 논리로 가동되는 배금주의 시스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찬 언어가 끊임없이 생산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더 고약한 불륜을 조장해야 하고 더 잔인한 폭력의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시청률이 올라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날마다 보는 신문은 특종이어서 인간의 폭력과 잔혹함이 극에 이른다. 이렇듯 인간의 언어는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다음 세대에는 타락의 극치를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고 두렵다. 오늘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일상에서 소통 수단으로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드라마, 뉴스는 물론이고 문학마저 탐욕스럽고,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니 문학인뿐만 아니라 미술인, 음악인을 비롯해 모든 예술 영역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은 우리 인간의 자화상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경전이라고 말하는 성경은 가장 더럽고 추잡한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어 거울 보여주듯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의 언어는 인간에게 스승처럼 어떤 길을 가르쳐주는 까닭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문학사를 배우고 미술사를 배우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니, 다시 말해 탐욕스럽고 타락한 인간의 언어를 확인하는 일이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언어를 닮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벗어나 산에 오르거나 바다에 나갔을 때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은 구급차 소리, 공사장 망치질 소리, 자동차 경적, 공장 기계 돌아가는 인간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까닭이다. 즉 바람소리, 빗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아름다운 것이다.
오래전에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친 것은 우리 문학을 비롯한 인간의 언어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이제 아담과 이브가 맨 처음 사물에게 이름 지어줬을 때처럼 참신하고 순수한 자연을 닮은 언어를 회복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문학사를 공부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는 일은 아직도 오래전에 떠나온 에덴동산에서의 때 묻지 않은, 그래서 탐욕스럽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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