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현자들의 상상력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1월 23일(일) 16:59 가+가-

어릴 때 『반지의 제왕』을 읽은 적이 있다. 영화도 봤지만 나름대로 머리가 굵어가면서 몇 번이고 다시 본 반지의 제왕에서는 내게 큰 질문을 하나 던졌었다. 그리고 수년 후 대학생이 되어 읽은 반지의 제왕 세계의 역사를 적은 『실마릴리온』에서도 또 한 가지의 질문을 던져주었다. 오직 인간만이 사는 우리 지구에서는 피부색만으로도 서로 증오하고 혐오하고 판단하는데 저 세계에서는 어떻게 여러 종족들이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하나이고, 인류가 초능력을 지녔다면 과연 현대와 같이 평등과 자유를 주장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 또 하나이다.
톨킨의 세계관에서는 지성체가 여럿 등장한다. 신이 있고, 신들이 빚어낸 요정, 난쟁이, 호빗, 엔트에 인간, 용들. 심지어 고블린이나 오르크라는 괴물마저도 전쟁을 수행할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
‘나와 다른 존재’가 여럿이나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끔찍한 세상인 것이다.
인간이 가지는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인들은 흑인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중세의 동아시아에서는 백인은 색목인이라며 마치 도깨비같은 존재라 여겼고 흑인은 아예 해귀(海鬼)라며 귀신취급을 하며 같은 인간임을 부정했다. 나치독일은 과학을 끌어들여 유대인과 집시를 게르만과는 ‘다른’ 열등한 ‘인종’이라며 탄압하고 학살했고 일본제국 또한 ‘우수한 일본신민’이 아시아를 보호해야한다며 침략하고 수탈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했다. 현대에도 시골에 가면 온갖 텃세를 부리며 ‘다른’ 지역에서 온 이주민을 차별하고 밀어내려 시도하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지성체는 내 씨의 번영을 위해 나와 관계없는 다른 지성체를 밀어내려는 동물적 습성을 버리지 못한 존재인 것 같다.
그런데 톨킨의 세계관에서는 여러 종족들이 명멸하다가 결국 인간만이 남는다고는 하지만 딱히 서로 드러내놓고 반목하고 싸운다기보다는 국가 대 국가간의 전쟁과 알력다툼같은 느낌을 보여줬다. 심지어 그려지는 시대상이 유럽의 중세 봉건주의 시대와 흡사한데 다른 종족의 문화를 숙지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준다니 도저히 가능할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특별한 초능력이 주어졌다면 같거나 비슷한 능력을 쓰는 존재들끼리 혹은 가치 높은 능력을 가진 존재들끼리 뭉치고 나머지를 배척하는 역사가 쓰여졌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지구상에 보잘것없는 신체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유일한 지성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IMF를 지나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의 시대가 왔다. 그건 정말로 갑자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는 인터넷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때는 너무나도 낯설고 꿈과 희망이 가득한 원더랜드였다. 오죽했으면 ‘닷컴버블’이라는 환상에 전 세계가 푹 빠져있었겠는가.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했다. 인터넷은 종교도 국경도 인종도 세대도 초월한다고. 그러므로 세계는 인터넷을 통해서 화평하고 건설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할 것이라고.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그런 장밋빛 전망은 모두 꿈과 환상이었고 현실을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전망이었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다. 인터넷은 압도적인 정보량으로 인간이 품는 미지에 대한 환상을 박살낸다.
거름망에 걸러지지 않은 악의와 증오를 날것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준다. 무협지에서 ‘심즉살’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온다.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마음먹으면 바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인데, 인터넷에 흐르는 악의와 증오는 그야말로 심즉살 그 자체나 마찬가지이다.
이토록 인터넷이 현실의 일부로 의태하면서 사회는 세대가 더욱 벌어지고 성별이 갈등하고 지역이 분열되고 정치성향이 나를 집어삼키는 법도 질서도 없는 혼돈 그 자체가 되었다. 하다하다 이제는 현실의 문제가 인터넷에서 확산되는 것을 넘어 오히려 인터넷의 문제가 현실에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
현대에 홀로 신화를 창조한 톨킨, 인터넷의 밝은 미래를 기대했던 수많은 지식인들, 이처럼 영리한 사람들이 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희망어린 미래를 예측하는 실수를 한 것일까? 세계적인 인재들이 돈을 굴린다는 월가에서 어째서 닷컴버블이라는 함정에 빠졌는지를 생각해보며 추측을 할 수는 있겠다. 월가의 인재들은 오히려 현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IT의 발전이 세계에 가져올 근본적인 변화를 누구보다도 먼저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그들의 기대와 예측을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기술의 개발보다 대중의 실망이 먼저 도달했을 뿐이었다.
너무나 현명하기 때문에 다가올 미래를 바람직하게 상상해내고 설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리석은 과거로 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