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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진화, 예술의 진화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1월 16일(일) 16:43 가+가-
오렛 동안 ‘현실’이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이 현실이라는 말 앞에 몇 가지 접두사가 붙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이 그것이다. 가상현실이란 컴퓨터 메모리상에 구축한 가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증강현실은 익히 알고 있는 현실에 전자정보를 추가적으로 덧붙인 것을 말하는데, 이 모두 IT기술의 발달을 통해 최근에 실용성이 입증된 것들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흔히 보는 내비게이션의 주행모습은 가상현실이고, 포털사이트의 로드뷰 서비스는 증강현실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있는 사례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SF작품에서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오랜 단골소재이다.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국회테러 시뮬레이션 영상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매트릭스」, 「토탈 리콜」 등의 영화에서도 중요한 주제였으며, 일부 컴퓨터게임에서는 난이도를 상대할 대상의 강약이 아닌 증강현실적 정보의 노출도로 조절하는 형태로 녹여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건설도면을 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3D프린터를 활용하여 짧은 시간 내에 건물을 올리는 공법도 등장했다고 한다. 가상환경에서 그린 건물이 3D프린터를 통해 현실환경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도 기차를 운전하고, 전투기, 여객기, 헬기를 조종한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로 쉽게 갈 수 없는 세계 여러 곳을 구글 어스 같은 3D 지도 서비스를 통해서 360°렌즈로 길을 빙 돌아보면서 감상할 수 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대부분의 환경에서 여러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활용된다.
현실의 모든 물리법칙이 적용된 가상세계에서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물리적 한계로 어려운 과학실험을 반복하고, 색맹이 세계를 더 다채로운 색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도록 시야를 증강해주고, 여러 경험의 접근성을 개선시켜준다.
오랜 세월 예술은 예술의 향유자들에게 간접경험을 제공해왔고 자연과 인간을 오갔다. 선사시대에 자연물을 숭배하고 고대에 인간을 발견하고 중세에 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신과 인간이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며 르네상스를 열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자연과 인간을 오가는 순환을 깨고 군중·개인으로 집결하는 모양새이다.
그간 건축은 외적 조형미, 시공의 효율성이 평가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거주자의 개인맞춤을 통한 편의성 증대가 또 한가지의 중요한 평가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그 외의 여러 예술분야에서도 향유자의 목소리가 더욱 깊게 개입하기 시작했고, 일각에서는 향유자가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우려하기도, 환영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예술이 더욱 다각화되어가는 과정이며, 그만큼 개인이 중요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술은 경험을 나눈다. 같은 경험을 백명의 사람이 백한 가지로 경험하는 것이 인간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누군가는 실망하고, 누군가는 쾌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고, 누군가는 주연배우의 전작을 찾아본다. 홀로 조용히 감상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며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고, 분석적으로 읽으며 마치 머릿 속에 시뮬레이션하듯 소설을 읽는 독자도 있다.
이미 이루어진 역사를 두고 매 시대마다 평가가 달라지는 것 또한 여러 개인들이 변해왔기 때문이다. 현대는 그저 그 개인을 제대로 발견한 첫 번째 시대일 뿐이다.
어린 시절 보던 영화나 드라마들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참 비밀스러웠다. 오직 둘만의 것이지만 모두가 비밀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두 사람의 사랑을 주변은 모두가 알고 있고 사랑을 방해하려는 사람, 사랑을 관전하며 답답해하거나 대신 행복해하는 사람, 지지하는 사람, 두 사람의 사랑이 공공연해지고 모두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 된 것 같다.
요즘 정치인들이나 경제계에서는 규제 철폐를 자주 입에 담는다.
하지만 실제로 규제와 같았던 인식이 하나 둘 허물어져가는 곳은 우리 사회 그 자체, 그리고 예술의 영역이다. 건방진 말일 수도 있겠으나, 고상한 시, 소설, 수필, 클래식음악, 동양화, 서양화, 소묘, 건축의 가치에 비해 폄하되던 서브컬쳐로 묶이는 부류의 문화들이 점차 서브컬쳐라는 이름표를 떼고 예술의 범주로 넘어오고 있다. 어쩌면 예술의 범주가 확장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것을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는 개인들은 여전히 과거에 있다. 집단의 논리에 여전히 일희일비하고 세밀하게 구분하여 차별하던 관습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과거 세대가 그러했던 것을 비판하며 자라왔으면서 말이다.
세계가 확장하고 있음에도 인간은 불변하는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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