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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음세대의 사회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1월 09일(일) 16:34 가+가-
대학생이던 10여 년 전, 국회에서 부모가 자녀 체벌을 제한하는 법안을 심사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2021년 초, 부모의 징계권이 폐지되어 부모의 체벌이 범죄가 되었다. 학생인권조례의 확장선으로 볼 수 있는 이 법안에 대해서는 내가 처음 접했던 당시에도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찬반이 갈리는 초점은 체벌 없이 훈육이 가능한가의 여부였다.
서유럽, 북미의 사례를 가져오는 찬성론자가 있는가 하면 문화와 역사의 차이를 거론하는 반대론자, 법안의 취지를 존중해 체벌의 정도를 지키자는 온건론자가 뒤섞여 제 목소리를 내니 매우 시끌했다.
체벌에 대해 이리도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녀의 교육과 성장을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학생인권조례’ 역시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에 있어 부당한 대우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여론이 수렴된 결과이고, 교육부의 교육과정 개정과정에서 유아교육 부분의 개설과 심화가 돋보이는 것 또한 보다 양질의 환경에서 아이를 보육해주길 바라는 여론이 도출한 성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의 처우는 쉽사리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적 교장선생님의 농담 반, 진담 반인 ‘고3은 사람이 아니라 공부하는 기계’라는 말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꼬는 듯하다.
교장선생님의 말은 어린 야생동물을 사람이 기르면 아무리 야생과 흡사한 환경에서 길렀다 하더라도 야생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게 한다. 인간은 길들였다고 표현하지만, 제 때에 야생에서 필요한 경험을 하지 못해 필요한 발달과정을 거치지 못한 일종의 성장장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이들 또한 ‘야생의 경험’을 상실한 채 자라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교육심리학에서는 한 사람이 성장·발달하는 과정을 두고 여러 시점, 여러 단계로 조명하려 애쓰지만 대체로 적절한 성장 수준에서 적절한 경험이 주는 이득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학문적으로 이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들의 ‘야생성’을 거세하는 ‘성장장애’를 강제하려 부추기고 있다.
또래와 어울리며 감성, 교감능력을 발달시키고 어른들의 언행을 지켜보며 반면교사·정면교사 삼아 사회규범을 체득해야 할 시기인 청소년기를 학교에서 집으로 노역하는 죄수처럼 지내는 것이 그것이다. 직관적인 지표로 확인하기 어려운 감성·교감능력의 발달보다 당장 지표로 확인되고 가감이 확실한 성적에 우선순위를 둔 매우 근시안적인,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행위이다.
문제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 자녀가 불이익을 볼까 두려워 전면적인 개혁보다는 부분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다수는 자녀가 학생에서 취업준비생으로 넘어갈 때 자연스럽게 교육 대신 취업으로 시선을 돌려버려 쳇바퀴와 같은 현상유지에 머물고 만다.
이로 인해 학교에서는 온갖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에서의 문제는 사회로 옮아가고 있다. 학교에서는 성적이나 주먹에 따라 그룹이 형성되고 계층화가 이루어졌다. 주먹에 의해 형성되는 그룹은 명백히 드러나는 일탈(폭력이나 갈취, 절도 등의 형사사건으로)을 통해 ‘일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드러났다. 하지만 ‘소수 학생이 저지른 한때의 일탈’로 치부되어 학교에서는 학교 이미지를 더럽힐 수 있다는 이유로 없는 일인 양 덮는데 급급하고 부모 또한 학교에 자녀를 맡긴 ‘을’이라는 생각에 강하게 대처를 요구하지도 못하고 있어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기성사회에서 유리된 ‘학생사회’는 법보다 주먹과 ‘학생사회’ 자체의 암묵적 룰이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는데,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군대와 유사하다. 병간에 이루어지는 온갖 계급별 악습, 법보다 가까운 계급과 권한에 의한 폭력, 차별, 심지어 이는 대학생 MT, 기업문화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부모의 체벌이 아동폭력이라는 관점에서 ‘부모의 체벌’을 제한하는 법이 국회에 제출된 것이겠지만 야근과 잔업을 당연시하고, 맞벌이가 아니고서는 현상유지가 힘든 사회에서 부모가 자녀와 시간을 공유하며 인간적으로 훈육할 시간이 주어진 이후에서야 부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도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생활비와 사교육비의 부담으로 형제가 없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 또한 문제라는 사람들이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또한 빈번하게 듣는 관용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이 단순히 미래의 백년을 책임지는 계획이 교육이라는 의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과거의 백년이 형성한 것이 현재의 교육생태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급진적인 개화, 경술국치에 의한 병영국가 일제의 강점, 주어진 광복과 6·25 한국전쟁, 개발독재, IMF, 그리고 코로나사태. 현 세대에서 벌어지는 온갖 학교‘사회’의 문제들은 원인 없이 나타난 결과물이 절대 아니다. 그 시대를 지나온 기성세대가 풀어내야할 꼬인 매듭 뭉텅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빚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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