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1년 12월 19일(일) 16:51 가+가-

중요한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서 입으로 몇 번이고 되뇐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입으로 말하고 귀로 다시 들으니 암기하는데 꽤나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말의 품격』이라는 책의 저자는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삶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고 주장한다.
나는 달변이 아니다. 오히려 눌변에 가깝다. 대화에 몰입하면 달변가가 될 때도 있지만 일상의 여러 대화상황에서는 말이 늦고 단어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상대가 치고 들어오면 반박보다도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다 대화 주제가 바뀌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나의 대화태도가 왜 자리잡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영향을 끼쳤을 몇가지 단서를 짐작할 뿐이다. 첫째로 성격, 둘째로 습관, 셋째로 어린 시절의 사건들이 단서가 되리라 짐작한다.
나는 꽤나 고집이 세고 선을 명확히 하려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세워진 기준과 원리원칙을 고집하고 선을 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아는 바가 없어서 기준을 세울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해하고 알 법한 이에게 꼬치꼬치 캐물어서 상대가 귀찮아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눈치를 꽤나 보는데, 상대가 듣기 싫어할 말과 표현을 탐색하고 금기시하려고 한다. 이는 내 성격과 어릴 적의 사건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웃으라고 한 말에 초상난다’는 속담과 같이 농담으로 한 말에 친구를 잃은 한 번의 경험이 아직도 화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때 한 번만 말을 참았다면 아직도 좋은 친구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아있다. 그래서 상대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어디 출신이고 주 관심사가 어느 것인데 어떤 인물을 싫어하고…….
탐색이 인간관계에서 끝없이 계속되니 자연스레 말을 할 때마다 단어선택이 늦고 눌변이 된다.
그래서 내뱉기 전에 검열하고 편집할 시간이 있는 글이 편하다고 느끼곤 한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수다쟁이가 될 수 있었고, 어린 시절에는 꽤 수다쟁이였던 것 같은데 성장과정에서의 경험이 습관을 만들어서 수다를 억누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의 품격』 서문에서 저자는 품(品)이라는 한자를 입 구(口)가 세 개 모인 형상이므로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이 책을 통해 소중한 사람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기원한다.
책의 내용 또한 화법보다도 태도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일만한 여러 일화를 소개하는 형태가 많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모두 아는 지침뿐이다. 대체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잘 듣는 사람이 좋다, 상대의 비수 담긴 말에 상처받지 않는 심지가 있어야한다 등등 어릴 적부터 늘 들어오던 내용들이 대다수이다.
우리 속담에도 유독 말에 관한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앞서 적었던 ‘웃으라고 한 말에 초상난다’와 같이 내게는 가볍고 의미 없는 말이 상대에게는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경계를 담은 것이 많은 것은 과거 우리 조상들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겪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책과 속담들은 모두 새로울 것 없는 사실들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적었듯이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외울 때는 입으로 몇 번이고 되뇐다. 아는 것을 몇 번이고 되뇔 때 행동에 베어들어 습관이 되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주장할 때 자주 ‘결론부터 간결하게’라는 말을 듣는다.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려는 습관이 듣는 상대를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중립적인 발제문을 밝히고 한두가지 사례나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한 후 나의 주장을 말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무거운 대화라면 상대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지만 가벼운 대화에서는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피곤하다고 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편하다.
글은 모두에게 이익이다. 저자는 교정된 깔끔한 주장을 상대에게 내보일 수 있고, 독자는 저자의 글을 차근차근 검증해가며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선호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압도적으로 대화를 많이 한다. 요즘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시지 등 SNS메신저를 통한 대화가 많으므로 말보다 글을 많이 쓰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정제되지 않은 입의 언어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언제나 말로 가득 차 있고, 말이 없는 곳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오지 뿐이며, 그러한 오지를 찾아간들 역시 내가 있기 때문에 말이 없는 곳이 아니게 된다.
때문에 말을 다듬고 태도를 가지런히하려는 노력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언제까지고 눌변인 채로 있는 변명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