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를 따르는 지혜
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21년 12월 16일(목) 16:40 가+가-

열심이 지나치면 과욕이 되고 과욕은 결국 패가망신하게 된다.
세상에 누구나 성공을 바라지만 결코 성공을 위해 억지를 부려서도 안된다. 물이 흐르다 웅덩진 곳이 있으면 채우고 지나가듯 자연의 조화에서 기다림과 인내를 배워가야 한다.
여기에 순리대로 따르는 지혜가 인생을 평탄케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때로는 강팍스러움이 삶을 조여 올 때 더 강함으로 이를 극복코자 유혹을 받게 마련이지만 강하고 센 것이 힘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된다.
고사에 ‘우생마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즉 소는 살고 말은 죽었다는 뜻인데 내용인 즉 말과 소를 함께 연못에 넣으면 말은 수영을 잘해 쉽게 빠져 나오지만 소는 수영을 잘못해 한참을 허덕이다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거세게 흐르는 강물에 말과 소를 넣으면 수영을 잘하는 말은 결국 익사하고 소는 살아 나온다는 것인데 이유인즉 말은 그 힘과 수영 재주를 뽐내며 물을 거슬러 올라 육지로 나오려하다 결국 익사하고, 반면 소는 물 흐르는 대로 떠내려 가다가 옅은 곳을 밟고 서고 또 흘러가다 옅은 곳에 서기를 반복하며 결국 강가에 이르러 뭍으로 나와 살게 된다는 것이다.
도덕경에 강량자부득기사(强梁者不得基死)라는 말이 있다.
강하고 센 것이 결코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으로 강함이 오히려 득보다 독이 되는 경우를 삶속에서 자주보게 되기 때문이다. 소신이 지나치면 독선이 되고, 생각이 지나치게 확고하면 고집이 되기 쉽다. 그 고집은 갈등과 반복의 골을 깊게하여 조직을 조화롭게 이끌지 못하고 일을 성취하는데 방해가 된다.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것이 잠깐은 기대를 모으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되고 끝이 좋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강량자부득기사’는 강하고 힘세게 밀어 붙이는 자는 그 온전한 죽음을 얻지 못할자 라는 뜻이다.
문제는 어떤 일이든 순리대로 풀어 나감이 과정과 결과가 좋게 되는 비결인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유달리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첫째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밀어 붙이니 타인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독불장군이 될 수 밖에 없다.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것이라는데 아예 남의 의견에 귀를 닫고 자신의 확신만을 고집하면 자신의 이집과 독선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 감내할 수 없는 히든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소통이 강조되는 것도 무슨 일에 목표가 중요한 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는 인식은 스스로 고립됨을 막고 일의 성사를 통해 함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리라.
인생의 삶이 싸움에 비유된다면 결국 내편 네 편이 있게 마련이나 이 역시 조화로움이 요구 된다.
내편만을 고집하거나 네 편만을 고집하다 보면 화합을 해치게 되고, 어렵게 이룬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이 어려울 것이다.
소인배일수록 내편만을 만들고 내편만을 챙기며 네 편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적게는 지역을 크게는 나라를 망치는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선의의 경쟁은 참으로 바람직한 경쟁사회의 미덕이나 편가르기식 경쟁은 결국 승자는 없게 되고 패자만 있게 되기 마련이다.
여야가 내년 대선을 향해 치열한 경쟁에 돌입한 지금 크게 우려되는 것은 내편과 네편의 골이 깊어져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마련이지만 반대편을 이해하려하고 포용코자하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면 갈등 치유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사생결단,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