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비밀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1년 12월 08일(수) 16:44 가+가-

아주대 이국종 교수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그는 탈북하다가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치료한 후 이런 말을 했다. “북한 병사의 몸에 남한 사람의 피 1만 2천cc가 3번 돌아 살아났다.” 이 말은, 출혈로 자신의 피를 다 쏟아내고 수술하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 3명분의 피가 3번 돌아 살아났다는 이야기다. 인체의 체중의 약 7~8%를 차지하는 혈액은 1/3 정도의 출혈은 버틸 수 있지만, 절반 이상을 잃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
흔히 피라고 부르는 혈액은 혈관 안에서 일한다. 심장에서 시작한 피에는 산소와 영양분이 담겨있어 동맥, 정맥, 모세혈관을 통해 우리 몸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연결된다. 혈관은 내부의 장기 기관까지 감싸고 산소와 먹을 것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하며 심장, 폐, 간과 같은 내부 장기들로부터 몸통, 팔, 다리, 머리까지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100조 개의 세포들은 모두 상호관계를 맺고 생명을 유지한다. 혈관이 없다면 우리 몸은 산소는 물론이고 수분과 영양분도 공급받지 못한다.
혈액이 심장의 동맥으로 나와 각 기관을 돌고 다시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들어오는 동안 혈액은 몸 곳곳에 공급뿐만 아니라 폐기하는 일도 한다.
혈액이 산소와 수분, 영양분을 공급하고 또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를 거둬들인다.
청소로 우리의 집과 마을이 깨끗해지듯 혈액을 통해 우리의 몸도 깨끗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세포 100조 개 하나하나가 혈액을 통해 먹고 숨 쉬고 배설하고 청소함으로써 생명 활동이 유지되는 것이다.
혈액은 호르몬을 분비하고 당을 떨어뜨려 주는 일을 하며 몸이 뜨겁거나 차갑지 않도록 혈관들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온도를 조절해 준다.
그 외에도 바이러스가 몰려오면 항체를 보내주고 칼에 베이면 흐르는 피를 막기 위해 혈소판이 일한다. 이렇듯 혈액은 우리 몸을 지키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일까지 한다.
이렇듯 피로 인해 생명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피를 공급하는 치료를 ‘수혈’이라고 한다. 수혈은 1901년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인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혈액형의 종류가 밝혀진 뒤에도 수혈은 쉽지 않았다.
몸에서 뺀 피는 금방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피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혈관을 동시에 연결해 수혈해야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발전되어 몸 밖으로 꺼낸 피를 저장할 수 있게 되고, 점차 발전하여 혈액백이 발명되어 1952년, 한국전쟁 때부터 쓰이기 시작해 1970년대에 전 세계로 퍼졌다. 그렇게 수혈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한 영화에서 본 장면이 있다. 한 동물학자가 실험하던 중 인도산 코브라에게 물려서 병원에 입원했지만,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한다.
코브라에게 물리면 그 독이 피를 응고시켜 피가 흐르지 못 하게 하므로 죽게 된다.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코브라에게 물린 사람의 피를 수혈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뱀에게 물렸다 살아난 사람은 그 핏속에 뱀의 독을 이길 수 있는 항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뱀에 물려도 죽지 않는다. 그러나 뱀에게 처음 물리면 사람이 독사의 독을 이기지 못해 죽는다. 이때 독사의 독을 이길 수 있는 항체를 가진 사람의 피를 수혈하면 이 사람은 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뱀에게 물렸지만 살아난 뱀 장수의 피를 수혈받아 그 사람은 생명을 건지게 된다.
생명은 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피가 온몸에 잘 흘러야 한다. 마음의 세계도 이와 같다. 건강하게 잘 흐르는 마음이 건강한 마음이다. 피가 모자랄 때는 수혈을 받듯이 나에게 부족한 것은 흘러 받아서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에 유혹이나 고통이 들어와서 막히면 그 마음은 죽어가게 된다. 코브라의 독이 혈액을 응고시키듯이 말이다. 그럴 때는 코브라에게 물린 사람이 항체가 형성된 뱀 장수의 피를 받고서 살아난 것처럼, 마음의 항체가 없는 사람은 마음을 열고서 고통이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항체를 가진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된다. 깨끗한 피가 잘 흐르는 사람은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깨끗한 마음이 잘 흐르는 사람은 건강한 삶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