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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 닭과 달걀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1년 12월 05일(일) 16:39 가+가-
어릴 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고 질문을 던지는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굳이 과학적으로 따져본다면 닭은 옛 공룡의 어느 종이 진화한 것이라니 달걀이 먼저일 것이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문제는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보통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만, 영영 만날 수 없게 된 사람을 영원토록 사무쳐하는 경우 또한 빈번하다.
10여 년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염을 하며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잡을 시간을 줬었다. 그 때 나는 창백한 할아버지가 도저히 우리 할아버지가 아닌 것 같은 비현실감에 도저히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손을 잡지 못했던 것, 살아생전 한 집에 살면서도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이 한스럽다. 그런데 누가 감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사실인 양 말할 때는 그 사람마저 비뚜름하게 쳐다보게 된다.
몇 년 전에 부모님의 결혼식 비디오를 부모님 결혼기념일 선물로 하자며 동생과 함께 디지털파일로 변환한 적이 있다. 부모님께서는 동영상 속 만날 수 없는 옛 인연들을 그리워하셨다. 나도 다시 뵌 어릴 적 기억 그대로의 외할머니와 젊고 정장을 차려입은 할아버지, 허리가 쑥 서있는 할머니를 보니 어색하면서도 그리워서 몇 번이고 다시 찾아보곤 했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앞에 서면 늘 할아버지의 손을 잡지 못했던 때가 생각이 나서 손을 잡고 싶고 옆에 있고 싶고 맛있는 것을 드리고 싶어진다.
재작년에 할머니께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에는 동생을 데리고 자주 찾아뵈었다. 찾아뵐 때마다 늘 할머니께서는 ‘아이구 내새끼’ ‘뭣허러 왔냐, 나 잘 지낸다’ ‘밥 묵었냐’ 말로는 왜 찾아왔냐고 타박하시면서도 반갑고 밥은 잘 챙겨먹는지 걱정돼서 속사포같이 질문을 쏟아내셨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때에 연락을 할 수 없는 것이 못내 걸려서 핸드폰을 다시 개통해서 드렸더니 매일 아침마다 전화를 거시니 모닝콜이 따로 필요 없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났나 속이 철렁해서 급히 받았는데, 할머니께서 평소대로의 어조로 건강한지 아침은 먹었는지 부모님은 잘 출근하셨는지를 물으시기에 슬쩍 안도했었다. 최근에는 코로나가 걱정되는지 건강한지를 늘 묻곤 하신다.
우리는 흔히 유교적 전통으로 가족의 인연을 천륜이라고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은(恩)이라고 설명한다. 자비로 양육하고 자비로 봉양하는 선업의 주고받음 관계라는 의미인데 이 은이라는 것이 몸이 멀어져도 마음이 기울어지고 자꾸 신경쓰이게 만드는 원인일까? 가족이라는 절대적 아군을 보호하고 의지하려는 동물적인 본능인 걸까?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느껴지는 눈물 찔끔 나는 감정은 설명이 어렵다.
책이나 영화를 보면 어떠한 주변의 저항과 훼방이 있더라도 연인은 뜨겁게 사랑하고 어떤 불합리하고 지옥같은 환경에서도 가족의 우애는 끊어낼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환상 속에서나마 이상적인 모습을 보고싶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는 속내이다.
내가 그리 많은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는 아직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다. 이 영화는 세 개의 미니소드가 최종장에서 하나로 모이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묶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혈연이 아님에도 가족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족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영화이다.
가까이 부대끼고 살았기 때문에 가족이 된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가까이하고싶어하는 것에는 ‘은(恩)’이라거나 어떤 정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원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리라고 나는 믿는다.
어린 시절 내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입원했을 때,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자동차로 급하게 병원에 들어서다 병원 실외기를 들이받은 것이 첫 차사고라는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막내동생이 협박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에 이천까지 한달음에 달려갔을 때,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나도 실외기를 들이받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몸이 멀어진다고 마음도 멀어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몸이 멀어진다고 마음마저 멀어지지는 않는다. 후회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평생 기억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마음에 멀어간 사람을 묻게 된다. 나는 마음에 묻은 사람이 아직은 적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묻힐 것이다. 별달리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고 누군가가 말한 적 없는 기발한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할머니를 찾아가서 한 시간도 채 있지 않으면서 늘 ‘할머니께서 할머니는 할머니께’를 입에 담는 털난 양심이 까맣게 때타지는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이 그랬듯 나 또한 특별하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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