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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추억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1년 11월 28일(일) 16:51 가+가-
세 시간 가량, 광주에서 이천을 향해 운전하면서 수많은 건축물들을 보았다. 주택,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빌라, 빌딩, 빌딩, 빌딩, 빌딩. 오직 네모반듯 콘크리트 건축물들 뿐이었다.
정부와 TV에 나오는 온갖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브랜드 재고를 위해서는 문화컨텐츠의 개발이 중요하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아 외친다.
그러면서도 정작 역사와 전통이라는 훌륭한 문화적 차별성을 지닌 우리 옛것에 대한 관심은 적은 듯하다.
각박하고 숨가쁜 일상을 살다보면 문득 가끔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보고싶다’ 정도로 스쳐가는 얼굴들이 있다. 그리고 간혹 생각만 할 때는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지만 막상 정말로 만나게 된다면 나도 모르던 감정들이 화수분처럼 솟아오르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TV방송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식상하지 않을법한 사람의 정석적인 이야기를 방송으로 만든다. 그리고 시청자는 출연자의 감정에 공감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되고 말이다.
방송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렇게 보고싶었으면 평소에 찾아보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우리도 알고 있다.
각박하고 숨가쁜 일상을 살다보면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쉽지 않기 때문에 옛 시절의 사람과 만나는 것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것을.
우리가 고향을 기억하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감상에 젖는 것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내가 알던 고향에 성인이 되어 찾아가보면 이미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
여러 이유로 국가나 사기업이 나서서 ‘재개발’을 하기 때문이다.
삼대가 살아온 집이 재개발지역으로 포함되어 일괄적으로 불도저에 쓸려나가고 할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산길은 아스콘으로 신작로가 뚫려 과거의 모습을 잃어버리기를 반복한지 반세기다.
우리는 여전히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고 이부자리를 펼치고 잠자리에 든다.
금속으로 된 적당한 길이의 수저로 식사를 하고, 손윗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역사의 흔적이다.
내가 이천으로 올라가며 세시간 동안 본 풍경에 우리 전통은 없었다. 건물 하나 똑 떼어 어느 나라 대도시에 붙여놓아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문화적으로 흔하고 무가치해 보였다.
그러면서 한가지 쓸데없는 걱정이 한가지 더 생겼다.
대학 시절에 중세국어를 배우면서 너무나도 많은 정체불명의 용어들이 생멸을 거듭하고 있어서 현재를 사는 우리도 정신차릴 수 없는데 다음 세기에는 언어의 변천과정을 어떻게 연구해야할까?라는 걱정을 했는데, 우리는 조선시대 가옥을 우리 전통가옥이라며 보고 배우고 자랐는데, 다음 세기의 우리 후예들은 우리 세기의 무엇을 보고 전통가옥이라고 배우며 자랄까?라고 말이다.
물론 수도권에 인구가 과다하게 밀집되면서 금보다 비싼 땅에 조금이라도 더 주거공간을 많이 확보하려는 노력이 수많은 아파트와 빌딩을 양산해낸 현대사의 경제적 논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분산을 시도하여 전통가옥의 흔적을 남기려는 노력보다도 밀집된 인구에게 제공하는 상품으로서의 가옥을 늘려가는 행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미묘하게 울퉁불퉁한 방바닥에서 구슬을 굴리고 대청마루에 발을 내리고 앉아 올라타는 강아지들과 발장난을 치던 추억들을 이야기했을 때 내 근접세대는 ‘시골집’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쉽게 공감하고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의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에도 가능한 일일까? 언젠가 지금 세기의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통가옥의 구조에 대한 사전지식 공부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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