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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가면 어디가 나올까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11월 23일(화) 16:38 가+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가수 이동원이 1988년 정지용 향수 시에 곡을 붙여 박인수와 함께 부른 시의 첫 행이다.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받은 이동원이 지난 14일 췌장암으로 향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아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가고 있는 진행형인지 모른다.
시를 쓰지 않는 가객(歌客), 시를 쓰지 않는 성우(聲優)가 노래하거나 시를 낭송하면 시인보다 더 시인처럼 감동을 주기도 한다.
1984년 봄이다. 무명가수 이동원은 봄의 소식이 먼발치 언덕 넘어오는 날, 우연히 모 회사 사보를 본다. 정호승 시인의 ‘이별 노래’를 눈으로 감동, 가슴에 와닿는 영감을 받는다. 정호승 시인이 일하는 잡지사로 찾아가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싶다 했다. 시를 대중가요로 부르는 경우가 흔치 않은 시절이다.
무명가수의 시적 모험에 호기심이 갔던 정호승 시인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 당시 이동원은 서른셋이고, 정호승은 한 살 위였다.
정호승 시인은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이동원의 인상은 시를 좋아하는 문학적 청년이었다. 낙엽이 지는 가을쯤 워크맨에 노래를 녹음해 왔다. 커피를 나누며 같이서 들어본 노래는 기대 이상이었다. 시가 가진 순백의 공기를 그대로 살리며 울림을 주었다. 이동원의 사색적인 음색이 시는 노래 되어 새로운 옷을 입히고 있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노을이 되리니/옷깃을 여미고 노을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 지면/ 내 그대를 위해 노래하는/별이 되리니.’
서정적인 시를 만들기로 명성이 있는 정호승 시인과 이동원의 감성이 맞아 떨어지면서 탄생한 노래다. 그 가을에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동원은 KBS에 10대 가수로 뽑혔다. 100만 장의 앨범이 판매되었다. 베스트셀러 시인, 정호승의 시는 그 후 많은 시가 노래 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처음 노래 된 ’이별 노래’가 애착이 간다는 소감이다.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나 김광석의 ‘부치지 않는 편지’도 정호승의 시다. 이동원은 정호승 시인의 ‘또 기다리는 편지’ ‘봄 길’도 노래로 발표했다.
그렇게 노래했던 그가 떠나간 길이 외롭기만 하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친구 전유성이 임종을 지켰다. 정호승 시에 붙인 노랫말처럼 ‘조금만 늦게 떠나’주어도 좋으련만. 옷깃을 여미고 붉은 휘파람 속으로 정녕 떠나고 말았다.
11월은 별이 유난히 많이 지는 달이다. 가을이면 뭇 청년들의 빈 마음을 채워주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이 갔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작곡가이자 가수인 함중아도 11월에 떠났다. 돌아가는 삼각지의 배호(29), 하얀 나비의 김정호(33), ‘난 정말 몰랐네’ 최병걸(38), 듀스의 맴버 김성재(23),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25) ‘내 사랑 내 곁에’ 김현식(32)이 모두 11월에 떠난 가객들이다.
가을바람은 가객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혼자서 떠나는 먼 길에 노래 불러주는 음유 시인이 필요한 것일까.
그런 말이 있다. 일생을 살아도 3일 장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고.
그러나 가객과 예술가에게는 다르다. 죽은 자들의 날은 고작 3일이지만 예술과 음악의 날은 훨씬 길다. 노래와 시는 집단의 기억이다. 그 속에 이야기가 힘이 되어 존재한다. 눈물은 향기가 된다. 기억에 남아 있는 꿈들은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눈을 감고 그들의 시와 노래를 들으면 수많은 별과 은하수가 내 집, 지붕 위로 수북하게 쌓인다.
세상엔 가을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지만, 사람을 남기고 떠난 가을도 있다. 가을이 슬프지 않은 것은 가슴마다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어김없이 다시 타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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