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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대계를 망치는 일초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1년 11월 14일(일) 16:49 가+가-
언제나 세상에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곧잘 사멸하곤 했다. 언젠가 불현 듯 나타난 ‘팩트’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실리지도 않았으면서도 이제는 아나운서까지 쓰는 말이 되어버렸고 최근에는 삶을 즐긴다는 의미의 ‘욜로’, 자신의 무언가를 뽐낸다는 의미의 ‘플렉스’,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을 ‘깔미’ 등 나날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신조어가 나타나고 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 때에도 신조어는 꽤 많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가 자라서 지금의 내가 되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도 유행어니 신조어니 남들 다 쓴다고 나도 쓰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올바른 언어를 구사하고 생각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주변에서 욕이나 유행어를 입버릇처럼 내뱉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린 시절 담임선생님들, 친구들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대부분 판에 박힌듯한 ‘바른 교사’의 이미지에 맞는 말과 행동을 갖춰서 내가 생각하는 ‘품위’를 보여줬고, 욕이나 유행어를 그리 자주 쓰지 않는 친구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그래선지 딱히 사춘기가 온 줄도 모르게 지나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학창시절 중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꽤 나쁜 인상으로 남아있다.
속 좁고 공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구닥다리 교사. 당시가 97년, 6차 교육과정에서 7차 교육과정으로 넘어가며 재량권과 창의성을 특히 강조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덧셈뺄셈은 반드시 세로식으로 계산 흔적을 남겨야하고 학급임원은 간식을 사야하는데 반장 부반장에 회장 부회장까지 뽑으면서 같은 학년 다른 반에 있는 자기 딸의 것까지 사야하고, 우유급식에서 반드시 두 개를 빼서 집에 가져갔다. 그래서 우유급식을 신청하고도 못 마시는 아이들이 늘 있었는데, 어른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옳은 것으로 알고 우유급식이 오는 2교시 후 쉬는시간이면 놓치지 않기 위해 당번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한 번은 내가 늘 반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딸에게 읽히기 위해 한 권 빌려달라고 내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만화로 읽는 수호지 1권과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얇은 어린이소설 한 권을 줬는데, 학년이 끝날 때까지 받지 못해서 결국 책장의 수호지는 이빨이 빠진 신세가 되었다.
내가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쯤이었던 것 같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훨씬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요즘세대의 누구라도 그 교사보다는 융통성 있고 규칙대로 잘 가르칠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통신이 발달해서 섬마을 영희가 소꿉놀이한 것도 기사가 되는 시대라지만 그 때 그 교사와 다를 바 없는 교사가 빈번하게 증언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교사가 되기 어려운 시대인데 왜 바뀐 것이 없을까? 나는 국가의 철학이 그대로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다.
전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교육은 ‘조국의 일꾼’을 육성하기 위한 것으로 기능했다. 말과 글은 통일성이라는 명목과 표준어라는 기수를 앞세워 방언과 구전문학을 말살하려했다. 얼마 전 모교에 갔다가 만났던 지금 대학 새내기들이 나와 딱 10살 차이인데, 그들은 나보다도 더욱 표준어에 가까운 억양과 말씨를 사용했다. 광주토박이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많은 경우 통일성은 효율성의 토대로 활용된다.
급격한 산업화와 효율성, 조국의 일꾼을 같이 놓고 보면 개개인을 국가 발전을 위한 부품으로 사용하기 위한 규격화를 위해 교육을 이용했다는 의심이 크게 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이런 교육풍토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이었다. 꽃이 피면 화단에서 과학수업이라며 꽃구경을 하고 날이 맑으면 도덕이라며 병설유치원 옆 히말라야시다 아래에서 자치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제기차기를 가르쳐주셨다. 눈이 오면 눈놀이를 하며 옛날이야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친구들을 모아서 교통수칙을 가르쳐주셨다.
시험 성적이 낮은 것을 나무라는 대신 계주에서 넘어진 친구를 비난하는 것을 나무라셨다. 우리는 다른 선생님들을 별명으로 막 부르면서도 담임선생님을 섣불리 별명 붙여 부르지 못했다. 임용고시는 이런 선생님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최고의 학원강사를 뽑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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