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언어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1년 11월 07일(일) 16:34 가+가-

어떤 나라든지 방언이 존재한다.
거대한 중국은 아예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이고 우리나라도 제주도 같이 오랜 시간 교류가 적었던 지역의 방언은 문법만 같을 뿐 거의 외국어처럼 들린다.
게다가 그 방언이라는 것은 나름대로의 역사성을 통해 변천을 거듭한 것이라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서가 반영되어있다. 이를테면 조상의 경험이 반영된 언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가 방언을 쓰면 이 사람은 어디 방언을 사용하니 어떤 성격일테고 어떤 화제를 싫어하겠구나라는 경험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가령 전남 방언을 쓰는 사람에게는 5·18과 전두환이 각별히 조심해야할 대화주제이고, 경북 사람에게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대화주제로 꺼내기에 매우 꺼려지는 식으로 말이다.
어릴 때 매우 서럽고 아플 때 울면서 엄마를 목놓아 찾은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엄마란 우리의 고향이며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대상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말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표준어를 배우고 익혔더라도,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살아왔더라도 태아적부터 들어왔고 자연적으로 습득한 고향의 방언은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안전하게 보호받던 어린 시절의 감정이 남아있는 언어적 고향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하루가 멀다하고 신조어와 외국어가 쏟아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방면에서는 지난 수천년의 발전보다 지난 백년의 발전이 더욱 빨랐고, 지난 백년보다 지난 십년의 발전이 더욱 가파르다고 하는데, 언어의 변화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언제부터인가 뉴스에서는 ‘팩트’라는 말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인터넷의 일부 사용자들이었으나, 점차 인터넷 논객을 거쳐 뉴스까지 점령하고 말았다. 이미 우리는 ‘검증된 사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를 조선시대의 중국어마냥 상국이 쓰는 ‘고급언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고급언어’를 사용하면 조금이나마 지적이고 신빙성있어보이지 않을까라는 노림수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우리말의 표준이 되어야할 뉴스기자, 앵커들마저 팩트를 표준어인 양 남발하니 그들의 무신경함에 내가 절로 창피할 일이다.
내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지만 10대, 20대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모아놓았다는 표를 보면 태반은 본 적조차 없는 용어들이 자리잡고 있다. 언어의 변화속도가 가속됨이 곧 세대 분화의 가속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지나간 세대에게 젊은 세대의 언어를 가르치는, 혹은 그 반대의 경우의 학원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인터넷서점에서 8년간 구매한 내역을 확인해보았다. 8년간 255권을 구매했는데, 1년에 32권, 한 달에 두세권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정도 구매량이 20대 상위 2%에 속한다고 하니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가입한 회원만을 대상으로한 통계이니 책에 관심이 없어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을 더한다면 심각하게 책을 읽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책이 지성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다독하면 어느 정도 지식의 폭이 넓어지고 지성의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자가 없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도 책을 읽지 않는 10대, 20대 사이에서 생겨난 신조어들이 과연 듣는 상대에게 긍정적인 정보를 줄 수 있을까? 아마도 가볍고 싸보이고 철없다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다.
본제로 돌아가서 다시. 우리는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보편적인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관심사, 성격, 금기, 지적 수준, 지성과 그 외의 것들까지도 말이다. 부모님은 집 밖에서는 표준어에 가까운 말투를 구사하지만 고모, 외삼촌, 할머니 등 가족을 만나면 절로 편안한 사투리로 말투가 바뀐다. 가족이 고향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늑한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세대는 나이들어 형제를 만났을 때, 과연 어떤 말투를 사용할까? 그들이 사용하는 고향의 언어는 어떤 형태일까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