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
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21년 11월 04일(목) 16:50 가+가-

2년여를 멈춰선 듯 하면서도 숨가쁘게 달려왔다.
전혀 다른 길에 익숙치 못하면서도 어쩌면 생존본능이 작용했음일까… 용케도 잘들 지내왔던 날들이 무엇이 어때서 어떻게 했는지조차 잡히지 않는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것은 불평보다는 어떻게든 적응코자 했던 공동체의식이 어디선가 발로 되었던 것. 우리나라 국민들이 훌륭한 잠재력을 소유한 세계 최우량 DNA를 가진 민족임을 새삼 깨달았다.
자영업이 무너지고 만남이 단절되고 생활 방식들의 전환이 강요되었음에도 잘 버티었던 것 다시 한번 나와 이웃에게 감사치 않을 수 없다.
이제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이 역시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새로운 시작을 기점으로 우리 모두는 누가 가르쳐 준 교훈이 아닌, 우리 모두 스스로의 지혜로 삶을 제자리에 안착시켜 갈 것을 믿는다.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는 국민 각자가 나라의 주인이고 또한 권력이다.
그만큼 각자의 책임이 강조되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나를 위하여, 나만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각자가 우리 모두를 위하여 방역에 대한 책임을 더욱 철저히하여 함께 자랑스러운 승리의 합창을 하여야 한다.
언제 또, 어떤 모양으로 코로나19보다 더 까다로운 바이러스가 우리를 침공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절감하며 우리 각자가 삶에 충실해야 함을 깊이 깨닫는다.
이제는 이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룩한 공동체를 생각하여 돕고 협력하며 희생의 고귀함까지를 삶의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
여기에 ‘여유로움’을 주문 드리고 싶다. 삶의 각박함은 본래의 패이스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판단이 잘못되면 곧 잘못된 행동이 따라오고, 바람직스럽지 못한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다.
여유로움에 넉넉함을 더하여 품고 이해하며 다독이는 심정으로 내일을 열어가고자 하는 소망을 우리 모두 공유하고 싶다.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어느날 어떤이가 석가모니를 찾았다.
‘저는 하는일마다 제대로 되는일이 없으니 무슨 이유 일까요?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저는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빈털터리인데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베풀게 아닙니까…’
그래, 누구에게나 일곱가지 베풀 것이 있다. 그 첫째가 ‘화안시’(和顔施)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미소띤 얼굴을 이름이요, 둘째는 언시(言施) -말로써 남에게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등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심시(心施) -마음 문을 열고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 넷째는, 안시(眼施) -사랑을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 즉 눈으로 베푸는 것, 다섯째는 신시(身施) -몸으로 베푸는 것이니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희생을 몸으로 떼우는 일, 여섯째 좌시(坐施) -자리를 양보하는 것, 항상 낮은 자리를 즐기며 윗자리는 기꺼이 내어주는 것. 일곱째는 찰시(察施) -굳이 묻지 않고 상대방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 이것들은 누구에게나 있는게 아닌가. 이제 여야, 그리고 군소정당의 대선후보가 모두 결정되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유한한 듯 하지만 어찌 보면 무안한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를 누구를 뽑느냐는 곧 나와 나라의 가장 소중한 일이다.
나라의 주인된 국민으로서 감정이나 파벌, 심지어 정치성향까지도 접고, 시대의 여건에 합당한 후보자가 누구인지 밤을 세워 고민하며 선택해야 한다.
여유로움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