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힘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1년 11월 03일(수) 16:41 가+가-

포도는 향기롭고 달콤한 과일이다. 살과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아서 입안에서 퍼지는 향미와 맛이 일품이다.
이 포도는 포도주로도 많이 만들어진다. 특히 유럽에서는 포도 대부분을 와인으로 생산한다.
그 품종에 따라서 다양한 와인이 나온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는 북미 지역의 콩코드 포도를 들여왔다.
그때 포도나무와 함께 포도뿌리혹벌레도 딸려왔다. 자연생태계에서 오랜 진화로 콩코드 포도는 포도뿌리혹벌레에 내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을 처음 만난 유럽의 포도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몸길이 1㎜인 노란색 진딧물인 포도뿌리혹벌레는 포도나무의 뿌리를 공격해서 수액을 빨아먹었고, 그로 인해 유럽의 포도나무 뿌리에는 혹이 생기고 혹 때문에 수액 공급이 끊겨 나무가 말라비틀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1863년 프랑스 남부에서 첫 감염 사례가 보고된 이래 프랑스 전역에 파죽지세로 퍼졌고 뒤이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요 와인 생산국을 덮치며 세계 와인 산업이 위기에 몰렸다.
1968년 프랑스 과학자 쥘 플랑숑은 이 포도뿌리혹벌레라는 진딧물이 원인임을 밝히고 필록세라 바스타트릭스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바스타트릭스(vastatrix)는 파괴자라는 뜻이다.
1870년 프랑스 정부는 2만 프랑(현재 가치로 약 60억 원)을 걸고 퇴치법을 공모했고 696가지 제안이 들어왔지만 특별한 퇴치 방법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한 해 생산량이 50억~60억 리터에서 30억 리터로 반 토막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풍전등화의 프랑스 와인 산업을 구원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포도뿌리혹벌레를 프랑스에 가져온 미국의 콩코드 포도나무였다.
미국의 곤충학자 찰스 라일리는 미국 자생 포도나무가 포도뿌리혹벌레에 저항성이 있다는 데 착안해 이를 대목으로 쓰고 유럽 포도를 접수하여 접붙이기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렇게 콩코드 포도를 비롯해 몇몇 미국 자생종을 대목으로 써서 접붙이기했다. 다행히도 그 접붙이기에는 효과가 있었고, 1900년 프랑스 포도밭의 3분의 2가 위는 유럽 포도, 아래는 북미 종 포도로 이뤄진 키메라 포도나무로 바뀌었다.
한 과학자는 “포도뿌리혹벌레의 창궐은 세계 와인 산업을 송두리째 뒤흔든 충격이었고 무분별한 동, 식물의 반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바로 보여주는 호된 교훈이었다. 접붙이기라는 대응책이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유럽의 포도들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 말인즉슨 오늘날 유럽의 와인이 전 세계인이 즐기고 있는 술이 된 건 접붙이기 덕분이라는 말이다.
접붙이기는 식물의 가지나 눈을 잘라내어 다른 뿌리가 있는 나무에 붙여 키워 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식물이 가지고 있는 서로 붙는 성질, 즉 유착 능력을 이용하여 서로 다른 두 식물의 형성층이 연결되어 둘 사이에 영양분의 흐름이 생기게 한다.
그 결과 새로운 개체로 자라는 것이다.
피부 이식은 환자 몸의 한 부분의 건강한 피부가 그의 몸의 다른 곳의 상처 부위나 화상 입은 곳에 새 피부가 형성되도록 붙여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식이 되고 나면 새롭게 붙여진 피부조직과 함께 유기적으로 자라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생명이 위태로운 도움이 필요한 존재에게는 건강하고 올바른 접붙여줄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접붙이기나 이식은 보잘것없는 것을 더 좋게 바꾸는 것이 아니다. 두 생명을 하나로 연결해, 두 생명이 연합된 하나의 생명과 하나의 생활을 누리도록 하려는 것이다. 죽어가는 한 생명이 다른 생명체의 도움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생명이 죽음(잘림)과 부활(자라남)을 통해 일어난다. 바로 연결로 인해 생명을 얻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연결되면 흘러주고 흘러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연결은 불행하고 어두운 마음에 밝고 건강한 마음이 연결되어 힘과 소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무의 접붙임보다, 피부 이식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의 연결이다.
내 마음이 연약할지라도 강하고 튼튼한 마음과 연결해보자. 그렇게 연결되면 내 마음에도 생명이 불어 넣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