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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작전과 390명의 이방인 입국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1년 08월 30일(월) 16:35 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 중이었던 우리나라 정부군에 협력과 기여를 하였던 현지 아프칸인과 그 가족 390명을 국내로 무사히 송환함으로써 작전명 미라클은 종료하였다. 국내 송환 사유에 대해 협력자, 조력자, 기여자로 우리 정부가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슬람교도들이고 우리와는 문화나 여러 가지 면에서 이질적인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왜 탈레반 정권에서는 살 수 없어서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이 길을 택해야만 했던 것일까? 등을 살펴보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부의 선한 마음으로 출발한 이번 일이 우리 국민들과 한 치의 갈등도 없기를 바란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시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시 국방부 건물에 대한 비행기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우사마 이븐 라딘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탈레반 정권에게 그를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곧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며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 주도의 일부 서방국가와 아프가니스탄의 반군 세력인 북부동맹이 이 전쟁에 합세한 끝에 2001년 11월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남부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의 지역에서 지속적인 테러 활동을 벌였다. 그럼에도 2020년 2월 29일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2020년 4월에 있었던 포로 협상이 결렬된 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무력 충돌을 벌이기 시작했다. 평화협정에 따라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추진하자 탈레반 세력의 지역 점거가 계속되었고, 8월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 점령을 앞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은 다시 탈레반이 장악하게 되었다.
탈레반은 어떤 단체인가? ‘탈레반’이란 이름은 구성원이 대부분 마드라샤에 다니던 학생들인 데서 유래했다. 마드라샤는 1980년대 파키스탄 북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 세워진 이슬람 신학교이다.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지방에서 질서를 잡는 군사 활동을 전개하며, 재빨리 남부 지방을 지배하던 군벌을 몰아내고 1996년 말 수도 카불을 점령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2001년 무렵 탈레반은 일부 북부지역을 제외한 전국을 장악하고,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2001년 3월에는 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미안 석불을 폭파했으며 이후 비 이슬람 문화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파괴를 자행했다. 국제사회는 탈레반의 각종 사회정책, 여성의 사회활동 억제, 바미안 석불과 같은 비 이슬람 종교 유적 파괴,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을 비판했으며 탈레반 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극소수였다. 무엇보다 탈레반은 수차례에 걸쳐 미국인에 대해 테러를 가한 혐의로 기소된 우사마 이븐 라딘과 같은 이슬람 전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되었다. 공식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며, 중앙아시아의 국가이다 면적은 65만 2230㎢, 인구는 3256만 4342명, 수도는 카불, 종교는 거의가 이슬람교다. 1인당 국민소득은 500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 공화제이며, 의회는 없고, 주요 정당으로 이슬람 사회당, 이슬람 당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1973년 12월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75년 카불에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1978년 9월 17일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정권 수립으로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공관을 폐쇄하였다가 2002년 1월 다시 국교를 재개하고, 상주대사관을 개설하고 있다. 양국은 1976년 11월 문화 협정을 체결한 이래, 외교 관련 15개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편, 2007년 7월에는 우리나라 교회 봉사단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선교 활동을 하다가 탈레반에게 피랍되어 2명이 희생당하고 나머지 인원도 1개월여 만에 생환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미군이 철수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은 서방국에 협조한 자국민을 색출 처단하는 공포와 불안의 연속이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가 빚어낸 큰 전쟁으로 중세 십자군 전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십자군 원정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는 기독교 성지였던 예루살렘이 7세기 중반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슬람의 팽창으로 637년에 이슬람 영토가 되었고 기독교 순례자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박해를 받는 등 종교 갈등으로 인한 성지 회복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포교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기존의 이슬람교도들과 이번에 입국한 아프칸인들은 우리나라에 훌륭한 포교 거점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대우함이 당연하다 할 것이지만 종교 활동에 대해서는 이슬람교의 특성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조심스럽게 주장해 본다.
부디 이번에 입국한 390명의 아프칸인들이 종교를 떠나 선린 우호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 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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