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망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1년 08월 25일(수) 16:44 가+가-

소망(所望)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소망은 “긴장감과 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태도,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이 가능케 될 것을 믿는 태도, 인내심을 가지고 무엇인가 기다리면서 바라는 태도, 무언가를 바라며 기다리는 태도”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태도와 누군가를 향한 신뢰의 태도를 포함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후 1년 동안 엄마가 아이에게 보여 주는 행동을 통해 아이는 소망에 대해 배우게 된다. 엄마가 아이에게 안락한 잠자리, 따뜻한 음식 등 신뢰할 만한 행동을 보여 주면 아이는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며 자신은 신뢰를 받을 만한 존재라고 느끼게 되고 신뢰감을 통해 아이의 마음속에 소망이 깃들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삶의 기본 덕목인 소망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며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이고,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슈바이처 박사는 “성공의 비결은 소망을 잃지 않는 데 있다.”라고 했고, 헬렌 켈러는 “참된 소망은 모든 일을 가능케 한다.”라고 했습니다.
소망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절망과 불만, 불평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똑같은 위치에서 소망을 가지면 달라진다. 소망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 있다. 소망은 어두움에서 빛의 아름다운 곳을 보게 한다.
영국 런던에 있는 케이 미술관에 가보면 프레더릭 왓츠라는 분이 그린 “소망”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을 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어떤 약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있다. 그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에 수건을 싸매었다. 앞을 보지 못한다. 그 여자의 손에는 조그마한 비파가 하나 있는데 본래 일곱 줄이었으나 여섯 줄은 다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아있다. 캄캄해서 앞을 보지 못하고 여섯 줄은 끊어졌지만, 이 여자는 한 줄을 가지고 비파를 계속해서 탄다.
바로 그 줄은 소망의 줄이다. 우리 인간이 믿던 모든 줄이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소망의 줄만 끊어지지 아니하면 우리 인간은 계속해서 모든 것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붙들려 갈 때, 어렸던 딸이 외손녀를 데리고 면회를 왔다. 관습을 따라 손녀의 이름을 할아버지가 짓게 되어 있어서 나는 외손녀의 이름을 ‘자지웨’라고 지었다.” ‘자지웨’는 ‘희망’이라는 뜻이다. 만델라는 늘 입버릇처럼 “나는 한 번도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라고 했다. 이 희망이 그에게 인내와 승리를 가져다준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했다. 사막은 불덩어리같이 뜨거웠고 갈 길은 멀었다. 아들이 말했다. “목이 마르고 지쳐서 죽을 지경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했다. “그렇지만 끝까지 가보아야 하지 않겠니. 얼마 안 가서 사람이 사는 마을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부자는 계속해서 걸었고, 그러다 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저것 보세요. 저 사람도 우리처럼 지쳐서 마침내 죽고 말았어요.” 아들이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야. 무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이 있다는 거다.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을 거야. 사람이 없는 곳에는 무덤도 없는 거란다.” 그렇게 결국 그들은 마을을 찾았다.
똑같은 무덤을 보고 희망을 품은 아버지와 절망을 가지고 대하는 아들이 있었지만, 아버지와 마음이 연결되면서 아들은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났다.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은 소망을 갖고 기다린다. 도무지 살아서 나갈 가망이 없는 환경에서도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살아날 수 있다. 역경을 극복하려 애쓴다. 하지만 소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쉽게 자포자기한다.
우리가 형편을 바꿀 수는 없다. 내게 닥친 어려움을 당장 해결하거나 없애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방향을 절망이 아닌 소망으로 바꾸기는 쉽다. 또한, 내가 소망을 가지지 못해도 소망을 가진 사람과 마음이 연결되면 그 소망을 흘러 받아 어떤 어려움도 벗어날 수 있다.
“소망” 그 작은 마음 하나가 우리의 삶의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