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08월 17일(화) 16:36 가+가-

우리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바이러스가 사람이 모이는 곳을 좋아하는 원인이다. 한 곳으로 모이는 것에 사람들은 위축된다. 목욕탕에서 내건 ‘영업 종료’의 안내문이 왜 이리 아쉬울까.
예전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동네 목욕탕은 50년 된 목욕탕이다. 옷장이 토끼장처럼 가로세로 70센티 정도다. 옷을 편하게 구겨 넣는 것은 어른신이나 초등학생이나 다르지 않다. 군대를 갓 제대한 젊은이는 관물(官物)함 정리하듯 가지런하게 넣는다.
목욕탕 입구문은 은색 알루미늄 새시. 이른 시간, 홀로 탕을 이용하기도 한다. 너무 유구한 시설, 사람이 많지 않다. 겨울이면 수증기로 유리창이 뿌옇다. 천정 가까이 아주 작은 유리창 문으로 북한산이 보인다. 여름에는 푸른 산, 겨울에는 눈 덮인 북한산이 5호짜리 그림 같다. 새마을 이름의 목욕탕이 지워진 대상이 되어 버렸다. 주변의 목욕탕이 하나둘 문을 닫는다.
새마을 목욕탕이 문을 닫자 직장 근처의 목욕탕이 용케도 단골이 되었다.
푸른 이름의 목욕탕은 이발도 하고 간단한 스포츠 시설도 있다. 30년이 되었다. 입구에는 인상 좋은 주인 할머니 한분이 표를 받았다. 소탈한 소호, 7층 건물에 전 층이 목욕탕 시설이다. 목욕탕으로 두 명의 딸을 대학에 보냈다. 딸들은 K법대를 나와 큰딸은 판사, 둘째는 검사다. 결혼한 딸들의 남편도 모두가 판검사다.
작년부터 코로나19로 문을 닫기도 하고 다시 열기를 반복했다. 결국 7월의 어느 날, 입구에 영업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였다.
“두 딸을 대학에 보낸 목욕탕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문을 열도록 최선을 다했으나 부득이 문을 닫습니다.”라는 주인의 안타가운 안내문이21세기의 목욕탕역사 기록일 것 같다. 세를 든, 이발관 아저씨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 중이라 한다. 다섯 평쯤 되는 크기의 이발관 장소를 물색 중이라며, 전화번호를 담는다.
우리나라의 목욕의 역사는 고조선 사회부터다. 한국인들은 향유, 향료를 애용해 희고 아름다운 피부를 숭상했다. 그래서 목욕을 좋아한 민족성이다. 목욕의 역사는 자료도 없고 구체적이지 않다.
다만 전해지는 추측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목욕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그 기록으로 전해진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동천(東泉)에서, 그 왕비 알영이 북천(北泉)에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왕과 왕비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목욕을 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유와 기록은 상상에 맡기나 보다. 경주의 안압지에서 출토된 석보 욕조는 왕족들의 목욕탕으로 야외에 만들어 사용했다. 바닥은 물이 내려가도록 설계되었고 여과 장치까지 있었다. 조상들의 지혜와 목욕탕의 구조를 알게 한다.
우리나라의 목욕탕은 불교의 문화가 한 축을 가졌다.
신라시대 불교의 전래로 종교 의식이 승화 하면서 서양과 달리 제의를 위한 자기 정화의 성격으로 일반인에게 보급 되었다. 이 때문에 동네의 목욕탕이 아니라 특정한 곳,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절에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중 목욕문화가 가장 발달해 있었던 나라는 불교를 받아드린 신라다.
6월 보름날 계곡과 냇가에서 목욕과 물맞이를 했다. 제례 전에는 반드시 목욕을 했다. 서민들은 냇가, 양반들은 목욕통을 준비해 헛간이나 부엌에서 했다. 당시 비누는 팥, 녹두를 갈아서 만든 가루비누가 있었다.
현대로 넘어오며 우리나라의 최초의 대중탕은 1924년 평양에 설립했다.
목욕탕은 관아(官牙)가 운영했다. 광복 이후 인구가 증가하면서 대중목욕탕은 시설의 규정을 만들어 사설 목욕탕이 생기기 시작 했다. 우리나라처럼 인구 밀도가 높으면서 전염병과 피부병이 없는 나라도 드물다. 그 같은 영향은 목욕탕문화의 발달로 청결한 민족성 때문이다.
개항이후 무역이 시작되며 외국인이 들어오기 시작 했다. 서양식 호텔과 여관이 들어서면서 숙박업소에는 목욕탕이 구비된다.
1900년에는 부산에 온천이 개발하면서 공중목욕탕의 붐이 일어선다. 오늘날의 대중목욕탕의 시초다.
1970년대 아파트가 대량으로 생기면서 집집마다 목욕탕이 생긴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대중목욕탕을 선호했다.
1988년 올림픽 이후에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때밀이 목욕문화가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거기에 때밀이 수건(이태리 타올)도 귀국을 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선물의 품목이 되었다.
그리운 우리 동네 목욕탕! 다시 문이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