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21년 08월 05일(목) 16:43 가+가-

무더위는 아무래도 사람을 느리게 하는데 코로나 펜데믹시대를 적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삶에 속도 조절이 붙은 것 같다.
빠른 것이 좋은 것만 같았던 세상에서 느림이 주는 평안함을 느림의 미학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
3~40년전 쯤으로 기억된다.
순천에서 광주에 오는 버스를 타면 직행임에도 광주까지 3시간 이상이 걸렸다. 비포장길 국도를 덜커덕이며 달려오는 중에도 중간기착지였던 곡성을 기다리며 마음까지 설레었던 것은 의미적으로 먹고 가야 했던 숯불구이 돼지고기 때문이었다.
어쩜 이때부터 돼지 숯불구이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아동문학가 ‘쉘실버스타인’의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서”는 그 스토리를 생각하면 감명 깊다. 귀퉁이 한쪽이 떨어져 나간 동그라미가 이빨 빠진 채 짝을 여행을 떠나는 일화이다.
동그라미는 굴렀는가 하면 멈춰서고, 또 굴렀는가 하면 멈춰서고 이렇게 여행길을 떠나며 여름 무더위를 견뎌내야 했고 겨울엔 빨리 가지 못해 혹한의 추위에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봄에는 멈춰 쉬는 동안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리며 각종 꽃들을 감상할 수 있었고 신록에 가득한 생명과 함께 숨결을 나눌 수도 있었다. 여름엔 매미가 등에 앉아 울어대고, 가을엔 나비들의 쉼터도 되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굴러 여행길이 빨랐음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었다.
이 빠진 내 짝은 어디서 찾지?
그러던 어느날 이빠진 짝을 찾아 신나게 굴러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꽃을 볼 틈도 매미나 나비에 쉼터를 줄 수도 없었다. 스스로가 삭막해짐을 느꼈다.
이빠진 짝을 내려놓았을 때 쉼이 있었다. 그리고 여유를 맛보았다. 자연과 더불어 대화하고 생각을 깊이 할 수 있어 좋았다.
이제는 이 빠진 한 조각을 찾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윌리암 브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했다. 고대 로마시인 오비디우스는 “휴식을 취한 들판일수록 곡식이 더 풍요롭게 자란다”며 여유와 휴식이 진정한 풍요로움을 안겨준다고 했다.
괴테는 “행복은 보일락 말락하는 작은 간이역” 같은 것이라 했다. 여름휴가철이다.
무더위에도 정치권은 분주하다 서로들 앞장서기 위해 더위로 아랑곳 없다. 몸과 마음이 함께 쉬는 휴가가 진정 휴가다운 휴가일 것이다.
바쁜 중에 생각조차 유예해버리고 살아가는 삶에 과연 바람직한 성장이 있을까…생각해 본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사람은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불편함과 어려움만을 준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강요적으로라도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준 것도 사실이다.
발걸음을 절제하고,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리두기. 즉흥적인 만남이 아닌 꼭 만날일인가.
그렇게 거리낌 제처 두고 만나는 중요한 만남이라면 그 만남에 나는 어떤 자세이어야 할까… 이렇게 계좌에 마음을 전하므로도 서로 정을 교감하는데 왜 굳이 꼭 그렇게 얼굴을 마주 보아야만 예의라 생각했던 것인지… 젊은 승려와 노승이 치는 종소리가 다르다고 한다.
젊은 승려는 기다림이 결여돼 종소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또 종을 치니 소리가 엉겨 종 본연의 청아한 울림의 소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무더위는 서둘지 않아도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갈 것이다.
고속도로보다 느린 국도가 비킴도 허용되지 않은 외짝 길이 더 많은 정을 안겨준다.
벼자라는 것도 봐주면 더 잘 자랄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