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에게서 배우는 나눔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1년 07월 14일(수) 16:34 가+가-

흡혈박쥐는 면도날 같은 앞니로 말이나 소 등 동물의 피부에 작은 상처를 낸 뒤 이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핥아먹는데 매일 밤 찻숟가락 한 개 분량의 피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틀간 계속해서 먹지 못하면 체온을 정상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며 체중이 25%나 줄어들면서 60시간 정도 지나 죽어버리는 특이한 체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먹이 사냥에서 허탕 친 박쥐는 동료에게 먹을 것을 구걸한다.
그러면 동료 박쥐는 자신이 먹은 것을 토하여 배고픈 박쥐에게 줌으로써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 그들은 언제나 먹이를 풍족히 구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서로의 생명을 돌봐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동료가 위기에 처하여 먹이를 구걸했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거절한 박쥐에게는 어떠한 위기에 처했더라도 결코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규율이 있다.
서로 먹이를 나누어 먹고 동료를 어려움 속에서 구해 주는 사회적 협동과 겨울에 동면 상태에 빠지는 유연한 체온 조절이 흡혈박쥐의 삶의 방식이고 다른 동물보다 8배 오래 사는 장수 비결이다.
암컷 흡혈박쥐가 흡혈에 성공하지 못하고 잠자리로 돌아오면, 동료 암컷은 자신이 섭취한 혈액을 토해 나눠준다.
하늘을 나는 유일한 젖먹이 포유류인 박쥐의 이미지는 서양에선 드라큘라를 연상케 하는 악마의 상징이지만 동양에서는 경사와 행운을 안겨주는 오복(五福)의 상징이다. 우리 선조들은 베갯모, 가구나 자기류, 건축 장식에 박쥐 문양을 새겨 넣고 박쥐의 습성을 본떠 복(福)자를 거꾸로 매달아 주렁주렁 복이 달리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서양문화의 영향으로 피를 먹고 사는 흡혈박쥐는 아예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도 흡혈박쥐의 이타심이 매우 강한 점에 대해선 감동했다.
유전자는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으로 온갖 수단을 동원하다. 흡혈박쥐는 굶고 있는 동료들에게 먹이를 토해내어 헌혈하는 행동으로 전체 개체를 유지한다. 이렇게 형성된 유대관계는 물리적 환경이 바뀐 뒤에도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박쥐의 유전자가 이기적이지 않고 이타적인 것이다.
그래서 도킨스는“흡혈박쥐는 서로 나누고 협력하는 신화의 선봉이 될 수 있고 좋은 놈이 일등이 될 수 있다는 자비심 깊은 사상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타심도 궁극적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라서 즉, 은혜를 베풀면 언젠가 은혜를 입게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흡혈박쥐는 이타적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약 22개월간 실험실에서 관찰해온 암컷 흡혈박쥐 23마리의 등에 작은 센서를 달아 야생으로 돌려보낸 뒤 포획 상태에서 먹이를 나누고 털 손질 등을 해주면서 형성된 유대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지를 확인했다.
실험 결과, 강한 유대관계를 보인 흡혈박쥐들이 야생 상태에서도 계속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며 이는 포획 상태에서 형성된 관계가 갇혀있거나 선택폭이 줄어든 데 따른 부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됐다.
동굴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박쥐나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는 새들은 공중으로 바로 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동물의 피를 빨아 마셔야 하는 흡혈박쥐들은 어떻게 날까.
미국 뉴저지에 있는 블룸필드대의 동물학자 윌리엄 슈트는 흡혈박쥐만이 뒤나 옆으로 뛰어다닐 수 있고 순식간에 높이 날 수 있는 등 뛰어난 비행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륙 모습을 고속 촬영하여 그 비밀을 알아냈다고 디스커버에 소개했다.
흡혈박쥐는 먼저 네 개의 다리로 지면에 선 후 뒷다리를 뻗어 무게중심을 앞다리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커다란 가슴근육을 이용해 앞다리를 뻗으면서 땅을 박차고 이륙한다.
이때 박쥐의 가장 긴 발톱은 가장 나중에 떨어지는데 이륙 방향을 조절한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3초.
이 짧은 시간에 흡혈박쥐는 공중으로 1m 정도나 솟아오른다.
이러한 고속 점프기술은 흡혈박쥐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 만약 소 등 동물의 다리에서 피를 빨아먹고 있는 순간에 소가 뒷걸음질을 치거나 드러누울 때 재빨리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흡혈박쥐가 만든 경제학은 아름답다. 얻고자 하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모든 흡혈박쥐가 동료로부터 얻고자만 했다면 그 개체는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암컷이 새끼를 위해 먹이를 나눠주곤 하지만 흡혈박쥐는 친족이 아닌 다 큰 성체 박쥐에게도 먹이를 나눠준다.
우리 사회에도 이 규율이 꼭 필요하다. 예를 들면 범죄환경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돌보고,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장래의 범죄를 미리 차단하는 일이고 이 혜택은 우리 자녀에게 돌아간다. 코로나로 오랜 시간 동안 어려움 속에 있는 힘들 때일수록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으로 삶의 방향을 정면 아름다운 경제학을 만들고 좋은 유대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웃을 보살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생명력을 유지시키고 미래를 위한 실속 있는 투자를 하는 것이고 복을 키우는 행동이다. 그리고 풍성한 마음을 나누는 기쁨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서 더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