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과 살인 같은 부사 이야기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07월 13일(화) 16:32 가+가-

여름의 숲은 고요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상수리나무와 이따금 숲 위로 날아오르는 산까지 떼도 조심스럽다. 간밤에 내린 비에 개울물 소리는 소란스러워 진다. 특히 여름의 숲은 분주하다. 그래도 숲은 누구하나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오래된 그늘이 모여서 살고 있다.
아침의 숲을 지나 신문의 지면을 펼친다.
묶은 정치인이나 갓 국회에 들어간 초선 의원이나 모두가 옳은 소리라고 제 잘난 주장을 펼친다.
젊은 대표 정치인이 기존에 있던 부처의 존재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해체의 순서를 밟자고 한다.
차라리 부처를 줄이는 것보다 용기 있게 국회 의원수를 줄이자 하는 것이 옳다는 논객도 있다.
이래도 저래도 미운나라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도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일본 정치권의 판단에 험난한 경기운영을 보인다.
코로나19로 취소해야할 올림픽이 그림자도 없는 관중으로 치룬다. 지금까지 이런 올림픽은 없었다.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1863~1937)이 창시한 제1회 올림픽이 1896년 그리스아테네에서 열린지 125년 만의 일이다. 7월 23일 개막, 도쿄 올림픽은 여러모로 사상 초유의 올림픽이다. 코로나19로 1년 연기 된 올림픽부터 불안한 출발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홀수의 해에 열린다. 그 뿐이 아니다. 무관중 올림픽은 최초의 일이다. 1.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16년 베를린, 1940년 도쿄, 1944년 런던 등 세 차례올림픽이 취소된 경우는 있어도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고독하게 기량을 거둔 적은 없다. 조직위의 무관중 결정으로 지금까지 팔린 경기장 입자권의 96% 이상이 무효가 됐다고 한다. 일본의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2일 2031명의 일일 확진자 수를 기록한다. 5월에 5000~7000명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정부는 12일부터 22일까지를 기한으로 4차 긴급비상사태를 발령했다. 일본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무관중이라도 대회를 치루는 것은 입장권 수입을 포기해서라도 중계권료로 돈을 벌겠다는 뜻이다. 누구를 위한 올림픽인가. 참가 선수단의 안전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정치권의 결정이다. 올림픽은 늘 새것을 만들어 왔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익히 알려진 새것들을 위한 행진이다.
역사의 실패는 늘 조급함이라고 했다. 글을 쓰다보면 시간에 쫒기는 경우가 있다. 물론 게으름이다. 어느 해다 서울신문 오피니언으로 활동을 하며 황금찬 선생 얘기를 하게 되었다. 무심코 ‘향년’ 93세라고 썼다. 깊은 밤 11시에 편집담당자의 전화다. 황금찬 선생께서 돌아가셨냐고 묻는다. 고인에게 붙이는 이름 앞에 ’향년‘이 사고를 친 것이다. 부랴부랴 수습을 하고 잠을 이루려니 잠이 올 리 없다. 얼굴도 화끈 거리고 조급함이 불상사를 일으켰다. 간혹 필요하지 않는 부사(副詞, adverb)를 사용하다가 사고를 친다. ‘굳이’를 ‘구지’라고 쓴 경우도 그렇다. 편집기자는 이러한 실수는 우리의 영원한 과제라고 위로하지만 좀처럼 뇌리에서 씻기지 않는다.
정치에도 쓰지 않아야 할 부사와 같은 정책을 쓰다가 사고를 친다. 부사 정치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의 정치인의 형태다. 문장은 순간 바꾸기도 하지만 정치에서 잘못정책을 시행하면 수많은 국민이 시련을 겪게 된다.
버마, 브라질, 미얀마 등이 그렇다. 제발 우리의 정치인이 쓸데없는 부사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요즘은 기사아래 댓글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
어느 면에서 댓글이 세상사의 돌아가는 정서를 더 직설 화법으로 전달 해준다. 무식한 것은 예외로 건너뛰고.
다시 신선하고 시원한 여름 숲속얘기로 마무리하자.
숲속의 개암나무는 열매를 툭 떨어뜨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지휘로 숲의 정경을 아름답게 경작을 하는 것도 아니다.
숲의 가슴은 넓고, 푸근하다.
자연이란 스스로 질서를 지켜간다. 사람의 힘이 아니어도 저절로 경작을 한다. 이 여름 숲의 지휘자는 누구일까. 그 지휘자를 만나서 세상의 지혜를 가져다가 정치에 전하고 싶다. 그래서 부사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억지를 부르는 일을 삼가 토록 하고 싶다.
여름의 숲에 가면 나오고 싶지 않다. 이 여름 산에 나는 춘자 씨와 영영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