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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21년 05월 06일(목) 16:57 가+가-
최근 ‘윤며들었다’는 말이 회자 되고 있다. 윤여정에 스며들었다의 준말이다.
배우 윤여정, 그는 한국배우 최초로 미국 최고권위인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았다.
한국이 놀랐다. 아니 세계가 놀랐다. 그 나이 74세. 1947년생이다.
그는 1966년 TBC 공채탤런트 3기로 연예계에 입문 36편의 영화와 10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에 출연 스페인시체스 국제 영화제 여우 주연상등 대종상 신인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등을 휩쓸었으나 2003년 영화 바람난 가족으로 스크린에 복귀하기까지 근 30년간 무명으로 지내며 잊혀져 갔으나 2010년 영화 ‘하녀’로 대종상, 청룡영화상, 춘사영화제, 대한민국 영화대상등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나 평범하게 주로 조연 역할을 꾸준히 해왔고 2016년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캐나다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나 뛰어난 활동은 없이 그저 성실한 배우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2010년 영화 ‘미나리’를 통해 제 27회 미국배우 조합상, 여우조연상, 제 74회 영국영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제 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 한인가정의 미국 이주 정착기를 그린 ‘미나리’는 재미교포 정이삭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미나리’는 서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시작으로 100개 이상의 트로피를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고, 윤여정은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아시아 배우로는 1957년 영화 ‘사요나라’로 일본배우 우메키미요시 일후 두 번째다.
결혼에 실패한 아픔을 겪기도 했던 윤여정을 한국배우로 크게 주목 받지 못한 평범한 역할들이었으나 이번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74세에 세계적으로 크게 빛난 윤여정의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면 삶 속의 하루를 최선을 다한 성공 마인드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조연역을 맡았던 그는 대사 하나를 소화할때도 한번도 그 자신이 돋보이고 성공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주연을 더 빛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영화 전체가 성공하는데 기여할까… 만을 고민하며 그야말로 한작품 한작품을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가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하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윤여정 신드롬은 적잖은 나이에 제 2인생의 도전장을 내민 이들을 양산케 했다.
“윤여정을 보니 이제 60이 넘었지만 뭘해도 늦지 않은 나이인 것”을 알았다는 사람들, 바리스타, 시니어모델,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다시 책을 펴드는 학구파들, 인생은 60부터라는 늑깍기들의 각종 도전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모습들은 한 사람의 삶이 세상에 새로운 산소를 불어 넣은 듯하다.
윤여정은 100년이 넘은 우리나라 영화역사상 배우로서 세계최고권위의 아카데미상을 받아 한류 문화의 콘텐츠 파워를 세계에 더 널리 펴갈 것이 기대되는 가운데 수상소감을 통한 그의 재치 넘치는 유머러스한 소감들은 내년 오스카상 진행은 윤여정이 맡아야 할 것 같다는 미국 언론의 찬사까지. 그의 센스는 미국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런 여유와 지혜는 의 성품을 새롭게 드려다 볼 수 있어 또한 감격스럽다.
그는 수상직후 8번째 오스카에 도전한 글렌크로스를 언급하며 “사실 그가 수상하기를 바랐다”며 여유를 보였고 특히 ‘미나리’팀을 언급하며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모두는 함께 가족이 될 수 있었다“며 감독님이 없었다면 이런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고 공을 동료들과 감독에게 돌렸다.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기자에게 “나는 최고, 그런거 싫다. 경쟁을 싫어한다”며 “1등 되는 것 하지말고 최중(最中)만 되면 족하다” “김연아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올림픽 스타들의 노력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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