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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줄 것이 많다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0년 09월 02일(수) 16:43 가+가-
어느 곳이든지 맡은 업무에 진지하고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크지 않고 자기 PR도 않기 때문에 당연한 존재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빈틈을 메우는 꼼꼼함 때문에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금과 같은 존재다.
녹아서 자신의 형체는 없어지고 주위의 맛을 내주고 엄청난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소금과 같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얼마나 표현해 보았는가!
어렸을 적 나쁜 것은 엄마가 먹고 좋은 것은 우리가 먹었던 기억이 많다.
엄마는 생선도 좋아하지 않았고 고기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참 소박하다고 그리고 당연하다고 철없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데 자녀들을 위한 희생이었음을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 희생을 깨우치던 순간 부끄럽고 미안하고 고맙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그러면서 상대방에 대해 배려도 하고 철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것도 희생이다. 마약, 간음, 게임중독, 살인, 도적질 같은 세상의 타락을 막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게 희생의 손길이 있기에 가능하다. 희생을 통해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사랑이다.
작지만 희생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희생 없는 십자가가 어떠한 생명력과 권세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희생이 있기에 아름다운 열매를 곳곳에서 얻을 수 있다.
태평양 한복판, 고래 한 마리가 포경선에서 쏜 총에 맞아 즉사했다. 죽은 고래를 끌어 올리기 위해 배가 가까이 다가가자, 어디선가 고래 두 마리가 나타나 죽은 고래를 사이에 두고 헤엄치기 시작했고, 곧 죽은 고래의 몸을 눌러 잠수하더니 영영 사라져 버렸다.
고래는 상처 입은 친구가 적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참치 그물에 갇히거나 작살 등에 맞았을 때도 그물이나 줄을 물어 뜯어가며 구해주려 한다.
수백, 수천 마리가 모여 사는 앵무새도 천적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고 날지 못하는 친구를 발견하면, 그를 돕기 위해 일제히 그 주변으로 날아든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 의해서 세상은 생명을 얻고 아름다워진다.
워렌버핏의 기부 서약서다.
“저는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규모로 보면 큰 액수지만 매일같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교회나 기타 기관에 저보다 많은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들에게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용감한 결정을 했고 자신들의 여가 생활을 포기하였습니다. 제 주식의 1% 이상을 저희를 위해 사용한다 해도 저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지도 더 편안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부한 나머지 99%는 다른 이들의 건강과 복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제 가족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사회의 필요를 위해 나누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자기 재산을 내어주는 것도 희생이다.
부자니까 당연히 기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소금과 같이 녹아내린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위에서 내려와 약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자기 유익만을 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고 타인의 행복을 위하는 사람은 자기 계발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게 된다.
우리 모두 주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소유하는 것을 배우다 보니 고립되게 산다. 사실 우리에게는 줄 수 있는 것이 많다.
사랑도, 웃음도, 소망도, 꿈도, 마음도 말이다. 요양병원에 가족과 떨어져서 외로움에 지쳐 있는 분들에게 위문공연을 갔더니 너무 좋아했다. 알코올 중독자, 마약사범이 사랑을 받을 때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사랑이 있어서 희생도 있고 희생이 있는 곳에 소망도 있어서 우리는 행복하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주역 이노우에 가오루가 젊을 때 중대 회의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에 괴한들의 습격을 당했다.
얼마나 심하게 맞고 또 칼에 찔렸던지 전신에 성한 곳이란 한 군데도 없었다. 집으로 업혀 온 그는 형에게 애원했다.
“형, 난 이제 살 가망이 없어. 결국은 죽을 건데 이 엄청난 고통이나마 빨리 면하게 해줘.” 절박한 호소였다.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주문이었다. 형도 동생이 이 상황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동생을 어찌 죽일 수 있을까? 머뭇거리고 있는 형을 향해 동생이 거듭거듭 애원하며 사정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을 보며 형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참으며 결단했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 치켜 올렸다. 그리고 동생의 목을 향해 칼날을 내리치는 순간이었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내려치려고 한 동생의 목은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몸뚱이가 있지 않은가?
그들의 어머니는 이미 짓이겨진 아들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내던진 것이었다. 결국, 어머니의 생명을 건 사랑으로 인해 동생의 소원은 들어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이노우에는 어머니의 초인적인 간호와 정성 어린 의사의 치료로 살아나게 되었다. 후에 이노우에는 한성조약을 체결하고 주한 공사, 진흙 내각의 대장 대신 등을 역임한 일본의 역사적 인물로 한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게 묵묵히 주위에 소망과 사랑을 심어주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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