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보수(保守)는 존재하는가?... 친일, 친미가 보수의 길은 아니다
박성민 기동취재본부장
작성 : 2020년 08월 31일(월) 16:59 가+가-

민족의 명예와 시장 자유 존중, 오래도록 계승 발전시켜온 사회적 역사적 제도를 고수하고 과거와의 단절보다는 연속과 계승을 원칙으로 삼는 유럽의 전통적 보수주의 성향은 보수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제시한 보수의 길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통해 프랑스혁명을 프랑스인의 자유를 침해한 세상에 일어난 가장 경악스러운 일이라 평가하고, 실력주의, 노예제도 반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주장하면서 서열중시 엘리트 주의를 보수의 길로 제시했다.
또 버크는 기존 제도의 질서는 여러 세대의 지혜가 녹아 있는 것이며, 인간의 숭고함은 자유와 자율, 자기 책임하에서 이뤄지고 필요할 때는 점진적 개혁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버크의 전통적 보수주의 길은 합리적이고 전통적이며 사회규범을 중시하고, 다양성의 원칙과 충분한 숙고에 따른 행동, 활력있는 사회를 위해 영속성과 변화의 조화를 제기했다. 외침이 잦았고 자주성이 강한 한국민의 성향과 버크의 보수주의 길이 매우 근접하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한국 보수 정당과 보수주의자들의 보수의 개념은 버크의 전통적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한국의 보수를 보수주의자라고 불러도 되는지 의문이지만 진보주의자들의 진보 정책에 반발해 결집된 세력이고 또 보수이외의 이념적으로 볼수 있는 정치적 스펙트럼이 없으니 일단은 보수정당과 보수주의자라고 보는 수밖에 없다.
한국 극우와 보수주의자들은 대체적으로 보수주의 시작을 자유당의 이승만정권시대부터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승만정권은 보수정권이라 하기에는 전통적인 보수의 조건에 미달이 된다.
보수라면 우선적으로 과거 한국의 전통적인 제도와 사회적인 규범등을 부활시켜 지켜 나가는 해방후 국가를 안정적으로 수호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일제치하 36년동안 민족을 배반한 친일한 세력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먼저 이뤄져야 했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부역자들을 철저히 색출해 처단한 것도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승만정권도 얼마간 노력은 하여 반민특위를 설치해 일본 잔재세력을 청소해 나갔으나 이승만정권의 의지력 부족으로 반민특위는 해체되고 결국 친일세력을 사회 지도층으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했다.
이승만정권의 친일 청산이 없는 친일 세력과의 협력은 한국내 사대주의적 친일세력을 양성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친일세력과 추종 세력들은 보수의 옷을 입고 아직도 일본의 36년간의 조선 침략을 미화하고 있다. 친일 청산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이다.
친일 논객이나 일본 우파논객 그리고 보수 친일 세력들이 주장하는 것은 일제36년동안 한국에 건설한 철도, 도로, 저수지 등이 오늘날의 한국근대화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현재 중국의 국가 주력사업인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과 유럽간의 철도연결을 통해 중국내 초과 생산된 상품을 주변 국가로 이송해 판매 목적 등을 위한 것이다.
중국이 이 철로 연결 사업을 중국 자본으로 진행하여 중국이 해당 국가에 무상으로 지원한 것과 다름없다 할지라도 이는 결국엔 중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한 사업이다. 이것 때문에 해당 국가가 중국을 미화하겠는가?
마찬가지다. 일제 치하의 한국내 사회 기반시설은 한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각종 유물과 전쟁물자의 강탈을 가속화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또한 중일전쟁과 러일 전쟁을 위한 기반시설이었다. 전적으로 조선이 아닌 일본을 위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한국인이 일본의 도움으로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상적인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잡론이다.
일본이 항복한 후 미국이 한 달 뒤인 9월에 한국에 진입하기 전까지 일본인들은 조선은행에서 화폐를 무제한으로 찍어낸 뒤에야 철수했고, 이로 인해 해방후 한국은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를 잡는데 애를 먹었다. 일본은 철저하게 한국을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약탈과 함께 짓밟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려 한 것은 팩트이다.
이승만정권의 친일청산 부재가 가져온 것은 한국내 교육과 군사, 경제, 국가 정책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친일 세력들에 의해 친일 잔재가 그대로 답습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재인정부가 추진중인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반환받는 것에 대해 현재 보수정당이나 보수주의자들은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국방력에 의존하자는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도 작전권의 반환을 노력해 왔고, 당시 공화당의 최영두의원도 국군작전지휘권 관련 협정의 폐기를 요구한 바 있다. 이들이 왜 미국을 의지하지 않고 자주국방을 위한 작전권의 반환을 요구했을까? 국가의 자주권은 국방력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10위권안에 들고 있지만 한국군에게는 작전권이 없다. 전쟁이 터져도 미국의 눈치만을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구상의 국가중 군대의 작전 권한이 없는 국가가 과연 몇 나라나 되는지 의문이다.
미국에 작전권의 이양을 요구한 문재인정부가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보수정당이나 보수주의자들이 떠들어 대는 것은 납득할수 없는 태도이다. 작전지휘권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한국민이라면 마땅히 가져와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승만대통령이 6·25전쟁 당시 작전지휘권을 미국에 넘겨 준 것은 이승만정권이 친미주의자임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국가 안위를 미국에, 외세에 의존하는 것은 보수주의자들의 성향이 아니다. 그것은 보수라기 보다는 사대주의적인 정치적인 성향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후 한국의 보수는 친미와 친일을 보수주의의 두 기둥으로 삼았다.
친일 세력의 청산이 없었던 이승만정권의 친일 세력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중 친일 세력이 적지 않는 이유이다.
지난해 7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시작되자 보수성향의 유력 일간지와 보수정당, 보수주의자들은 일본 비판보다는 문재인 정부 비판에 전력을 쏟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고, 1965년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비난하면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국민들이 일본 아베내각과 국내 보수 신문, 보수정당에 분노해 ‘NO JAPAN 상품불매운동’의 시민운동을 벌이면서 보수주의자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후 한국의 친일 세력들은 전에 비해 비교적 잠잠히 있다.
일본의 보수와 극우는 일본만을 위하며 일본만의 길을 주장하고, 미국의 보수와 극우는 미국만을 위하며 미국만의 길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는 혐한은 일상으로 하고, 미국을 비판하기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극우는 미국이 세계 경찰의 역할을 끝내야 하고, 파견 군인들도 다 되찾아와야 한다는 등 미국만을 위하는 길을 가고 있다.
트럼프가 내세운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미국민들은 세계의 대통령이 아닌 미국만의 대통령을 원했다. 이것이 미국 보수와 극우의 길이다. 진보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게 보수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극우라는 집단이 코로나라는 악성 전염병으로 전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때 교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이후 코로나가 전국에 확산되자 ‘교회와 보수를 향한 코로나 테러’라고 주장하는 교회의 모습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4월 국회의원 총선에서 보수정당이랄수 있는 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에 300석중 180석을 내 줬다. 예상을 했지만 아마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국민이 민주당을 택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는 통합당이 전통적인 보수의 길을 버리고 집단적 이익에 빠져 대다수 국민들의 뜻이 어디 있는지 둔감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친일과 친미의 길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들중 상당수가 변화를 바라는 중도 개혁의 보수주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일명 극우의 프레임과 종북 프레임으로 상대 정당을 농락하면 과거에는 원하는 것을 얻을수 있었지만 올해처럼 앞으로도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할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가 보수주의자들보다 그 위에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발달된 시대에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대중을 바보로 바라본 이념론자들이 바보이다.
시대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라면 차기 선거에서 보수는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수와 극우가 ‘무조건 친일 친미, 무조건 반진보’의 태도를 고수하더라도 말이다.
그 이유는 현 문재인정부가 무감각하게 진보라는 이름으로 중요실수를 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위한 차별금지법 추진이다. 소수 인권을 위한 법이라고 추진되고 있는 차별 금지법은 성소수자를 위한 법이다. 이 법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아 이 법의 통과로 인해 고통받게 될 다수의 인권은 위한 진보 정권에게 없다.
차별금지법 즉 성소수자를 위한 법을 추진한 정당은 차기 선거에서 1천만명의 기독교인들의 분노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비단 차기 선거에서만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실행되는 한 기독교인들의 분노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항상 노출되어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이 될테니까 말이다. 통합당 김종인씨의 보수의 길은 비록 형식적인지 알수 없지만 국민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