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한다. 채우고자 하면 비워야 한다.
이기려면 양보와 지는 일을 즐겨야 한다. 역발상의 지혜가 우리의 삶 속 곳곳에 도사린다.
멀리 보려면 눈을 감으라 한다. 운동선수가 힘을 뺄 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자기 이익에만 치우치는 사람이 결국은 외톨이가 되고 성취 불만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세상을 다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우매는 정작 한치 앞을 못본다는 것이다.
앞만 보고 가는 삶에서 차분히 숨을 멈추고 좌도 우도 뒤쪽도 바라보아야 한다.
나라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졸부의 생각에도 아쉬움이 가득한 것은 답은 간단한데 어려운 해답만을 찾는다는 생각이다.
요즘 립스틱이 지고, 메니큐어가 뜬다는 비유가 등장했다. 외출때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필수가 되어 여자들이 입술을 드러 낼 기회가 없으니 립스틱을 소홀히 해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그 대신 잘 드러나 보이는 손톱과 발통치장이 늘어 메니큐어의 매출은 늘었다고 한다.
진위여부를 떠나 우리는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상황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성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말씀이 있다. 세상에 교만한 사람을 선호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교만으로 지팡이를 삼는 사람들이 숱하다.
교만은 자기 과시욕을 통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무기이다.
그러나 자고로 교만한 사람들이 높아지는 일도 성공하는 사례도 전무하다.
요즘처럼 미래예측이 불가능한 불안정한 삶속에서 정치권만이라도 국민들게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
이는 큰 노력도 특별한 실력도 요구되지 않는다.
기존의 생각에 과감한 역발상을 도입하면 쉬우리라 생각된다. 거대 여당의 밀어 붙이기식 국회운영에 일부 협치를 주장하는 여론이 높다. 그러나 협치는 참으로 좋은 말이되 여건에 부당한 협치는 협잡이 되는 것이고, 뻔히 부당한 일에 체면치례로 동조하는 것도 불의와의 야합이 될 수 있다.
협치의 멋을 부리려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제는 갇힌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역발상을 제의해 본다.
이제까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고정된 틀에서의 역발상이다. 타이어 제조회사에 젊고 유능한 경영인이 새로 채용되었다.
나이 많은 사장은 사원들을 모아 놓고, 그 경영인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난 이미 늙었습니다. 타이어로 말하자면 헌 타이어와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 소개하는 이 사람은 젊고 유능합니다. 그러니까 새 타이어와 같습니다” 이윽고 패기만만한 젊은 경영인이 부임 인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우리 사장님은 자신을 헌 타이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타이어는 오랜 세월을 펑크 나지 않고 잘 굴러온 훌륭한 타이어입니다. 저는 아직 사용도 안해 본 스페어 타이어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저를 사장님께 비길 수 있겠습니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부정적인 사고에 치우치면 결국 그 어려움에 침몰 당하고 만다. 어렵고 힘들수록 긍정적 사고로 역발상의 용기로 맞서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치졸한 행위는 상대방의 실패를 자신의 성공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경쟁자가 어떻게든 무너져야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사고는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독소가 된다.
당연한 판단을 역발상에 비유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