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순간 세상이 둘로 나뉘인 기분이다. 남과북, 동과서 세대화 세대간도 아닌, 사람과 사람간에 큰 벽이 가로 막힌 기분이다.
나만이 갖는 지나친 감각일까…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지고 놀라운 것은 사람이 두려워진다.
최근 우리는 두 분의 죽음을 보아야 했다.
6·25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백선엽 대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두 분다 큰 별로 바라 볼 분들이시다.
한 분은 100세의 세수를 누리셨고, 한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비명에 세상을 하직하셨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겪는 죽음, 특별한 일로 받아 들이기보다 그저 의연하게 애도를 표하고 잊혀지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 겪은 두 죽음은 온통 세상을 둘로 갈라 놓은 것 같아 섬뜩하다.
세상이 이렇게 극과극 둘로 갈리워져 있었나 새삼 놀랍다. 사람이 악해지려면 한없이 악해지는구나하는 생각은 사람이 조심스러워지게 한다.
코로나19는 세상 풍도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사람 간 거리두기 (하긴 사람간 거리는 두어도 마음은 더 가까이해야 한다고 설득하긴 한다)는 친구나 이웃 심지어 친족간에도 은연 중 거리감이 생기게 했다.
지인과의 식사 자리도 뜸해진 게 사실이다. 이 사태나 지나면 차분히 만나 식사나 나누자 하여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되었다.
두 죽음으로 맞이한 두 세상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긴 하다. 나라에 크게는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고, 쉽게는 여성향과 야성향이 있다.
한 사안을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은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 가족간에도 뜻이 다 같을 수도 같으란 법도 없다.
심지어 한 몸으로 불리는 부부라 할지라도 뜻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또 우리는 삶 속에서 서로의 다름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다름이 도를 넘어 적대시 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의 두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판단은 개인간 의견을 넘어 커다란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음에 오삭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 세상을 살면서 예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져야 사회 질서가 세워지고 인간간의 관계도 원만케 된다.
예의는 질서를 배려를 낳고 너와 나의 동반자 관계를 원만케 한다.
그래서 예는 삶의 기본이요. 예의가 중시되는 이유이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다.
또한 사자는 어떤 사안에 대해 자랑도 논리전개도 변명도 할 수 없다. 진영 논리가 무엇이기에 이번 세상을 떠난 두 분이 흡사 흑과 백으로 갈렸다.
누가 백이고 누가 흑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선호와 비선호로 한분은 미화되고 한분은 혹독한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고… 다시는 세상에 없는 나라의 큰 그릇인 두 분에게 그분들의 죽음 앞에 좀 더 정중할 수는 없는가… 좋은 행적들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내 높이 사고, 아쉬운 행적들은 더 좀 희미하게 줄여 보면 안되는가 말이다.
시시비비가 극에 달하니 냉정히 두 분을 조명해 보자. 먼저 100세의 세수를 누리고 자연사 하신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영웅으로 칭송 받는 분으로 우리나라 국군의 최초 대상으로 예편하신 분이시다.
그 후 장관과 사회 단체의 장을 지내시고 인천에서 모 학원 이끄시는 학원 재벌로도 불리는 분이다.
33세에 육군대장이 되셨으니 그를 국군의 아버지라 부르는 분들도 탓할 것은 못된다.
6·25전쟁 때, 용맹스런 장군으로 각종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두운 면을 보면 20대 초반 일제 강점기때 만주군 간도 특설대에 2년간 장교로 근무하면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분이시다.
그래서 친일파 인명사전에 올라 친일파로 분류되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군사재판에서 이른바 좌익으로(공산당) 몰려 사형 언도를 받을 때 그가 구명 운동을 하여 그 공로로 한때 무소 부위의 권력을 함께 가져 인천에서 학교 재단을 이룰 때 서민주택 마구잡이 철거등 서민들께 아픔을 겪기도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사법고시를 거쳐 검사로 재직했으나 얼마 후 변호사로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사회 약자 편에서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며 평생을 가족조차 돌보지 않은 채 어두운 곳만을 찾아 빛이 되고자 했다.
변호사 시절 지적 재산권 문제 전문가로 큰돈을 모았으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현재약 70억원) 시장 시절 말단 공무원도 허가권 하나 받으려면 해외여행 티켓을 공무원에게 뇌물로 주어야 통했던 부정풍토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9년여를 재직했으나 주택 한 채없이 마이스 재산 신고를 하고 있다.
그런 그가 2017부터 3년여 시장직에 있을 동안 여비서를 성추행 했다는 고소를 당했다.
일방적 피해자 진술만 있고, 그의 진술은 전무하다.
죄가 없으면 당당히 맞서지 왜 죽음을 택했느냐는 비난이 있다. 그러나 쓰레기더미에 누워서도 편한 잠을 자는 사람이 있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치 않으면 자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숫한 의문만이 남아 있다.
왜 3년이 넘도록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잠잠하다가… 3년의 정이 쉽지 않은데 그것도 측근의 비서로서, 그토록 힘들었다면 왜 이제야… 한마디로 세상이 무섭다.
세상에 숨겨진 비밀은 없다. 박시장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범죄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지금 그 분을 비난한다하여 나라의 정의가 세워질 것도 아니다.
산에는 나무도 있고 숲도 있다. 종교 재판에 원님 재판, 이 시대에 말이 되는가… 정이 있는 세상이 그립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 않았던가… 두 분 고인의 명복을 빈다.
논쟁은 있어 마땅하되 악의적 비난은 살인이다. 좀 더 착해지자 정이 있는 세상을 만들면 그 속에 내가 살아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