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은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관의 양쪽 옆에 구멍을 내라. 그리고 내 양손을 관 바깥쪽으로 내 놓아라!” 그래서 유언대로 양쪽으로 구멍을 내고 관 바깥쪽으로 손을 내밀어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이 주변 나라를 모두 다 정복할 때 달을 쳐다보면서 ‘이제 나는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구나’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런 알렉산더 대왕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강물이 바다에 흘러가도 바다를 채울 수 없듯이 인생도 빈 그릇처럼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공허하고 허무하고 고독한 것을 막을수도 채울수도 없습니다.
배고픈 가난한 시절 농사를 지으시던 어머니는 항상 용돈을 챙겨 주셨는데 철부지였던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왜 살아 생전 어머니에게 좀더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내 곁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여운은 내마음에 깊이 간직되어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 눈물이납니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 희생함이 삶의 목적인것처럼 여기시는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은 우리의 공허한 마음을 충분히 채워주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었겠지요.
마음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보이는 물질의 세계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사랑안에 평안이 있었고 기쁨이 감사가 소망이 지혜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을 그리워하고 찾아 헤매기까지 하지요. 어머니 무덤에까지 찾아가는 이유가 어머니 사랑을 만나고 싶어서이지요.
조류 중 모성애가 가장 뜨거운 것은 펠리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펠리컨은 펠리컨의 위가 담을 수 있는 양의 3배를 더 담을 만큼 큰 주머니가 부리 아래에 달려 있습니다. 그 주머니는 먹이를 잡을때도 사용하고 새끼들에게 먹이를 줄 때도 사용합니다.
북극 지방에 햇빛이 잠깐 비추는 몇 개월 동안은 먹이를 이 주머니에 저장하고 먹이를 구할 수 없는 겨울에는 새끼들에게 저장한 먹이를 나누어주어 겨울을 나게 합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나기 전에 먹이가 떨어지면 펠리컨은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피를 새끼 입에 넣어줍니다.
어미 펠리컨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허물이나 잘못된것을 오히려 어머니 당신자신의 허물과 잘못으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이세상 모든 물질의 세계는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우리 마음속에 심어진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미 두꺼비가 자기를 꼭 닮은 새끼를 얻는 방법은 아주 특이합니다. 어미 두꺼비가 커다란 능구렁이에게 찾아가서 구렁이를 자꾸 약을 올립니다. 구렁이는 두꺼비에게 독이 있어서 잡아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꾸 약을 올리는 두꺼비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올라 참지 못해서 잡아 먹고 맙니다.
그러면 어미 두꺼비는 능구렁이의 밥이 되어 사라지고 두꺼비 새끼들은 능구렁이의 몸이 토막 토막 날 정도로 그 영양을 먹고 튼튼하게 능구렁이 뱃속에서 태어납니다. 어미 두꺼비는 자신이 능구렁이에게 잡아 먹혀서 새끼를 낳아야 새끼들이 구렁이의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고 살아갈수 있기 때문에 생명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미물인 어미두꺼비의 새끼 사랑도 이리 아름다운데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일까요?
새끼를 위해 희생하는 지혜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요?
우리 인생들을 하늘 백성으로 낳으시려고 십자가의 희생을 마다 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큰 사랑이 우주 만물에 담겨져 있음을 깨우칠수 있어서 다시 한번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사랑의 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희생이 있는 사랑이어야 더럽고 추한 인간을 거룩하고 의롭고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