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조지 5세와 메리 여왕 사이에 태어난 한 왕자가 있습니다. 그는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가진 매우 세련된 몸가짐과 대범한 인품을 가진 왕자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에드워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세계 각국을 방문하다가 미국에서 만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는 월리스 심프슨 부인으로 밝은 성격을 지닌 데다 정치에서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뛰어난 매우 총명한 여성이었습니다. 에드워드와 그녀의 사랑이 점점 깊어갈 무렵 1936년에 에드워드는 국왕이셨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영국의 제40대 국왕이 되었습니다. 국왕이 된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여인인 심프슨과의 결혼을 서둘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와의 결혼으로 국왕으로서의 국무에 더 적극적으로 전념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 메리는 물론 영국의회에서는 그들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다른 이유를 불문하고도, 이미 두 번이나 결혼한 적이 있는 월리스 심프슨 부인을 왕가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드워드는 국왕의 자리와 자신의 사랑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국왕 자리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 1936년 12월 11일 밤 에드워드 8세는 BBC방송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태도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사랑하는 여성의 도움이 없는 한, 영국 국왕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에드워드는 사랑을 위해 왕으로서의 명예로운 자리를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국가와 국민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유로 그는 국외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와 심프슨은 사랑을 이룬 것에 만족하며 모든 시련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다음 윈저 공작 부처로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꼭 아니마 밈의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 제목인 “아니마 밈”은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본래 혹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작사, 작곡된 노래입니다.
그 가사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서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하지만 다음 가사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자기의 동료들이 비참하게 가스실로 불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절을 이렇게 슬프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 메시아는 너무 늦게 오신다.” 그들의 소망과 절망이 모두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용소 안에 있던 단 한 명만 그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외과 의사 출신의 한 유대인으로 그의 마음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수용소 안에서 언제 가스실로 불려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다듬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죽음을 받아들인 듯 체념하고 깊이 잠들어버린 한밤중에도 그는 홀로 일어나 어느 날 우연히 줍게 된 유리 파편 조각 하나를 날카롭게 갈아서 깨끗하게 면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고 죽음의 사자처럼 나치 군병들이 그들의 방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나치 군병들은 매번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수염 하나 없는 깨끗한 청년의 모습에서 삶의 강렬한 의지가 보여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수용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나게 되었고 그는 소수의 생존자 중의 하나가 되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수용소의 문을 빠져나오면서 아니마 밈의 노래를 이렇게 고쳐 불렀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 믿음을 포기한다.” 그가 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는 에드워드의 사랑을 보았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한 유대인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왕자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한평생을 함께하고픈 꿈이 있었고, 외과 의사였던 그 유대인에게는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너무나 높은 장벽과 어려움에 막혀 있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라면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큰 어려움이 찾아와도 꿈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바라는 대상이 있을 때 마음에 소망을 둡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형편과 환경에 의해서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쉽게 그 소망을 버립니다. 하지만 환경에 의해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무엇을 품고 사는가에 의해서 나의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믿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몸이 약하게 태어났습니다. 누가 보기에도 불행한 환경이지만 제가 가졌던 가난은 나를 끊임없이 배우게 했고, 연약한 몸은 나를 부지런하고 자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한 것은 단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있는 나라들이 잘 사는 것은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고, 유대인들이 세계를 장악하게 된 것은 죽음이 도사리는 수용소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마음이 강한 자가 진정한 지도자가 됩니다. 꿈을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