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은 약이요. 원망은 병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자신을 돌아 보아 자아를 찾아갈때가 아닌가 한다.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고 난장판을 방불케하는 현실이다.
여야를 떠나 국가안위와 민생을 책임져야 할 정치권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와 여당을 향산 야당의 무차별 융단 폭격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국민이다.
서로 사이 좋던 친구 하나가 어느날 “바람이 부니까 나뭇가지가 움직이고 있군” 했더니 옆에 있던 친구는 “저건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거야” 하며 서로의 말이 옳다고 주장하더니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면서 격렬한 언쟁으로 번져 결국 두 친구는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이에 대해 과연 누구의 잘못이 큰가를 묻는 제자들에게 스승은 “바람이 움직이든 나뭇가지가 움직이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 가장 큰 문제는 자네들처럼 서로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마음이라네. 그 바람은 자칫하면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주기 마련이지. 그러니 자네들 마음속 어디에서 바람이 부는 지나 잘 헤아려보게”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조절해가며 바름을 쫓아 현명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자아 확립을 잘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옛말에 ‘사돈이 장에 가니 따라 간다’는 말이 있다.
정보화시대에 여론의 국가적 사회적 책임은 더 더욱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진보와 보수의 언론이 있어 나름대로의 논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나 일방적 사실왜곡이나 사안의 침소봉대로 여론을 통한 선동은 자제되어 마땅하다.
최근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두고 가족들의 의심되는 범죄 내용을 두고 수사에 나선 검찰의 행태는 과연 검찰 권력의 끝이 어디까지 인지 여지껏 지레 짐작만 했던 그들의 막강한 권력에 두렵고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저들이 맘만 먹으면 검찰권력 쿠데타로 나라를 넘어뜨리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범법의심이 있거나 범죄사실이 드러나면 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 내는 수사는 당연하겠으나 그 수사의 경증은 범죄의 내용에 따라 상식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국 법무장관을 타킷으로만 가족들의 수사로 나라의 정권 지지층과 비지지층이 우려스럽게 양분되었고 여야는 자아를 상실한 듯한 막판싸움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일단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법 절차에 따라 임명했으면 이를 부정하고 검찰이 수사중인 사안에 대해 각종 억지주장을 늘어 놓아 국력을 양분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질 일이 있는 사람은 당연 책임을 져야 할 것임에도 정치권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며 여론이 요동치고 있다.
야당의 핵심인 자유한국당이 그 어떤 주장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받은 국민들이 마치 사촌 장에 가면 따라가듯 휘말려서는 안되며 사안의 진위를 면밀히 따져보아 자아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먼저 공격자의 의도를 살펴야 할 것이다.
국민과 국가가 아닌 개인의 집단목적을 위한 공격에 비집단이 말려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살펴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이때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인격적 모욕을 서슴치 않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괴에테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날 들에 핀 한떨기의 아름다운 꽃이 그 마을에 사는 가장 맑고 아름다운 처녀의 손에 꺾이어 시들어지고 만다. 그러나 그 꽃은 이런 노래를 부르며 시들어 죽었다는 것이다. 내가 한 송이의 앉은뱅이 꽃으로 세상에 태어났다가 악하고 추잡한 사내의 발에 무참하게 짓밟히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처녀의 손에 꺾이어 죽기 때문에 꽃으로 태어난 보람을 느꼈노라”고 사랑이 결여된 모든 공격은 폭행일 뿐이다.
성찰에 인색한 원망은 무지를 넘어 악이다.
진실은 용감함으로 보상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