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초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토스카니니,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명성 있던 지휘자입니다.
그는 원래 첼로 연주자로서 심한 근시로 인해 연주 중에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주 때마다 연주할 악보를 모두 외워서 연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주회를 앞두고 그 악단의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 중에 누군가가 지휘를 대신에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서 임시 지휘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세계적 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만약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유럽의 한 첼로 연주자에 불과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악보를 모두 외울 수가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발돋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토스카니니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어려울 때 힘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해서 불평하지 말자,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아담은 에덴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아니했는가. 눈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자, 눈물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더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신다.”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고통마저도 더 감사할 조건으로 여겼던 토스카니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실연이나 고통이 있다는 것은 괴롭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더 큰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토스카니니의 근시가 그에게 오히려 기회와 새로운 재능의 계발을 이루어준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토스카니니 보니 여러분이 더 잘 아는 유명인이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 하면 모두 아실 텐데요,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생각나는 것은 “빅뱅 이론”, “아기 우주”같은 그의 업적보다는 스스로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존하고 그의 마음을 대변하여 말해주는 컴퓨터 음성입니다. 하지만 그는 “루게릭병이 아니었더라도 지금 같은 물리학자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호킹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읽고 쓰는 일에 지금같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강연하고 시험점수 매기느라 연구를 제대로 못 했을 것이므로 결국 루게릭병이 나를 이론 물리학자로 만든 셈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옥스퍼드를 3년 만에 마치고 스무 살에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간 영재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자꾸 넘어졌고, 병을 연구하는 학자였던 아버지가 그를 전문의에게 데려가서 루게릭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병은 근육이 점점 수축하여 심장근육에까지 이르면 사망하는 불치병입니다.
그렇게 근육이 점차 굳어간 호킹은 휠체어를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었고 폐렴으로 기관기 제거 수술까지 받게 되어 목소리까지 잃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의사소통을 포기하지 않고 처음에는 알파벳 카드를 보고 눈썹을 들어올리는 싸인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단어와 문장까지 인공 목소리를 통해 미국식 악센트까지 넣어 의사 표현하게 됩니다.
이런 육체적 한계를 가지고 죽음의 두려움을 안고 사는 그이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지금은 집행유예 기간이라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그런 그는 오히려 몸이 악화하여 갈수록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이루어 냅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예견했던 우주 ‘특이점’의 존재를 스물세 살 때 박사학위 논문에서 증명해냈고, 서른두 살 때는 영국 학술원의 최연소 회원이 되면서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습니다.
또한 77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중력 물리학 정교수로 임명됐습니다. 그리고 기관지 제거 수술한 지 3년 후인 88년 ‘시간의 역사’를 펴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과학 분야에서 수십 개의 상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육체적 한계에 메이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많은 일들을 이루고 생애를 마감합니다. 그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서을 고통이라고 정의하는 걸까요? 내가 가진 질병, 또는 가정환경이나 타고난 신체 조건이 고통의 조건일까요? 우리가 앞서 본 토스카니니나 스티븐 호킹을 보면 그것을 절대 우리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고통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회이고 놀라운 삶을 만들어내는 촉진제이며 삶의 축복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주어진 조건을 고통이 아닌 기회로 삼으면 그것은 기회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기회와 축복을 발견하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