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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은 사랑이 묘약
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19년 07월 25일(목) 16:13 가+가-

무더위에 정치도 경제도 앞이 꽉 막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여지껏 이처럼 아수라장이 된 정치판을 본적이 없었고 피해자는 나라와 국민이다.
나라와 국민을 외면한 국회가 과연 존재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런 국회라면 차라리 대통령의 고유권 한인 국회 해산권이라도 발동해야 되지 않느냐는 분통터진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이제는 서로가 타협점을 찾아 잘해 주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마음은 접기로 했다.
상식도 원칙도 예의도 책임도 져버린 그들에 대한 기억은 또렷히 간직하여 내년 총선에선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보여 마땅하다.
이제는 정치권에서 아름다운 삶을 바라는 기대는 접고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들 삶속에서 해법을 찾아야겠다 생각하니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이 짙어지면 짜증도 분통도 삶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가 싶다.
현실 속엔 전혀 해법을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햇볕에 검게 탄 농부의 얼굴, 평생 자식사랑 뒷바라지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손, 한더위 용광로의 열기에 비오 듯 땀을 쏟는 노동자, 예쁘게 몸매를 가꾸고, 예쁜 옷을 입고 뽐내는 모습보다 더 사랑스럽고 가슴에 짙은 정으로 안겨 온다.
모든 어려움은 사랑의 실종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다.
이 시대에 사랑의 아이콘을 떠올려본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이자 철학자로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해 의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913년 아프리카에 정착하여 1965년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고 의술로 사랑을 실천했다.
그의 이런 삶의 빛이 어두운 세상을 비춰주어 1952년 마침내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노벨상 위원회는 슈바이처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 결정을 알리며 시상식에 꼭 참석해 줄 것을 부탁했고 박사의 영예로운 수상소식을 들은 세계인들은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모두들 그가 시상식에 참석해 아프리카에서 행했던 수많은 사랑과 봉사에 대해 연설을 들려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위원회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축하해 드리고자 합니다. 왜 거절하십니다?”
“그런 과분한 상을 준 것은 고맙지만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제가 상을 받겠다고 며칠이라도 진료실을 비운다면 저를 기다리는 많은 환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에게는 상을 받는 것보다 이곳에서 한사람이라도 더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자신을 위한 명예로운 상보다 인간 사랑이 앞서는 슈바이처 박사야말로 오늘 날 이기적인 생각으로만 가득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쌓으면 쌓을수록 이기심이 더욱 높아지고, 예의도 배려도 책임도 상실되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기대는 접는 게 지혜인 것 같다.
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 했는데 기대가 크면 클수록 무관심의 골도 깊어지는 것이다. 남이야 어찌됐건 내가 사는게 우선이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을 넘어뜨려 밟고 서고자하는 세대야말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사랑의 마음으로 바로서야 겠다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 사고는 사회 전체를 병들게하고 결국은 자신도 그 늪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욕심에 눈이 가려 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이웃에 관심을 갖고 나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고 배려하며 아끼는 마음이 세상을 바꾸는 첫 걸음이다.
약점이나 하찮은 실수를 침소봉대하며 가짜뉴스까지 곁들여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지혜로 여기며 승리의 무기로 여기는 정치권은 난관을 극복하는 묘약이 바로 사랑임을 깨닫기 바란다.
세월 따라 성숙은커녕 순구렁이로의 내리막을 내닫는 것은 나와 이웃이 함께 사는길 일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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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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