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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고 나쁨의 기준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19년 07월 24일(수) 16:08 가+가-

갑자기 아들이 애타게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 아버지! 나와 보세요.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로 아침부터 이리 소란이냐?”
“말이 없어졌습니다. 마구간에서 사라졌습니다.”
느긋한 아버지의 태도가 답답한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마구간으로 갔습니다. 아들의 말대로 바닥에 고삐만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고 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속상한 마음에 말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아들은 허탈하고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으냐, 하지만 누가 알겠느냐?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하며 뒷짐을 지고 돌아서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들이 또 아버지를 급히 찾았습니다. 저번과는 다르게 아주 기쁜 목소리로 말입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십시오. 집을 나갔던 말이 돌아왔습니다. 거기다 암말도 데리고 와서 말이 두 마리가 되었습니다.” 달아났던 말이 색시까지 데려왔다며 마을 사람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아버지는 “이 일이 오히려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의외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두 마리의 말이 집에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새로 온 말을 길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익숙해졌을 때쯤 그 말에 올라 타보기로 했습니다. 아들이 말에 올라타 말의 옆구리를 발로 툭 하고 치자마자 말이 천방지축으로 날뛰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아들은 말에서 나가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크게 다치게 됩니다.
그렇게 아들은 절름발이가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일을 보고 공짜로 생긴 말 때문에 아들이 절름발이가 되었다며 쑥덕거렸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오히려 무심히 지나치며 말했습니다.
“이번 일로 좋은 일이 생길지 또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일 년 후, 오랑캐가 쳐들어와 나라 안이 발칵 뒤집혔고 그로 인해 마을의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터로 끌려나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다친 다리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이해합니다.
“다리를 다친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었구나. 아버지 말씀이 맞았다. 좋은 일이 화가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복이 되기도 하는 것이구나.”
그 후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이 늘 돌고 돌기 때문에 어떤 일이 좋고 나쁜 것인지 미리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새옹지마’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고 또는 내가 이 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말을 잃었다는 것으로 나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말을 잃었지만,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물원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동물이 나오는 동화책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실제로 동물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작은 두더지, 토끼부터 갖가지 종류의 뱀이나 어마어마하게 큰 코끼리나 키가 가장 큰 기린까지 정말 많은 동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정말 좋아하는 동물을 만났습니다. 그건 바로 동물의 왕 사자였습니다. 대부분 사자는 멀찌감치서 드러누워 쉬고 있거나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사자 굴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앞을 지나갈 때, 갑자기 사자 한 마리가 포효를 지르며 아이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사자에게 놀라서 아들은 아빠 뒤에 숨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영문을 모른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아들아?” 새파랗게 질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저 사자가 나에게 달려들었어요. 보이지 않아요? 아빤 무섭지 않아요?” 아빠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빠에게도 보여. 그리고 아빠도 사자는 정말 무섭단다. 하지만 아빠는 사자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철장과 유리 벽도 함께 보고 있단다. 그래서 아빠는 겁나지 않아.” 그제야 아들도 비로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편안하게 사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눈에는 무서운 사자만 보였지만 아빠의 눈에는 그 사자에게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철장과 유리 벽이 보였습니다. 사자를 보는 아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고 철장과 유리 벽을 보는 아버지는 편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앞에 있는 사자를 보고 무서워합니까? 아니면 철장을 보고서 마음을 편안히 가집니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말처럼 내게 일어난 일은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모든 일을 좋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자라는 두려움 앞에는 철장과 유리 벽이라는 안전함과 편안함이 있는 것처럼 내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가 나의 마음을 결정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모든 형편과 상황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여긴다면 그 모든 것들은 감사의 조건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감사의 조건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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