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 열 받으면 더 덥습니다.
여름 무더위에 열 받지 않고 열을 식히는 비결은 사랑입니다.
요즘 정치권에 사랑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해도 포용도 협력도 없습니다.
이러 저러한 괴변들을 늘어 놓지만 그 색깔을 곰곰이 살펴보는 너야 어떻든 나만 살자는 것입니다.
끔직스럽게도 한발 더 나가보면 너가 죽어야 내가 살 것이니 제발 좀 죽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름 외부 열기는 더워도 우리들 마음은 상쾌할 수는 없을까요? 내가 좀 손해를 봐도 상대방이 만족하여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는 것이 상쾌입니다.
그 속에는 사랑의 향기가 가득한 것입니다. 남을 곤경에 빠뜨려 얻은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민주사회의 미덕은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것입니다.
이 시대처럼 빈부의 격차가 심했던 때가 없었던 같습니다. 좀 저속된 속담이긴 하지만 ‘누구는 배고파 춥고 누구는 배터져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마까지 겹쳐 무더운 여름철 짜증나는 일들을 삭히는 여유, 상대방의 허물도 상처된 부분도 감싸안으며 넉넉히 품어주는 사랑의 배려가 소망스럽습니다.
최근 일제강제 징용자 보상 판결로 말미암은 보복조치로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를 단행하여 자유무역 질서를 교란시킨 일본의 행위는 전국민이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한목소리로 부당한 처사를 지적해야 함에도 이번 조치로 평소 미워하는 정부가 타격을 받는 것이 고소하여 속내가 다른 일본 편들기에 심지어 가짜 뉴스까지 양산하여 정부를 더욱 곤욕스럽게 하려는 모습은 너무나 저질스런 분통 터질 일입니다.
여든 야든 나라가 어려우면 니편 내편을 따지기에 앞서 반복이나 아쉬움도 사랑으로 덮어 아름다운 용납으로 함께 웃는 결과를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무더위가 극성이던 작년보다는 조금 더위가 덜할 것 이라는 기상청의 장기 예보이지만 어떠한 무더위라도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면 상쾌한 마음으로 몸에 붙는 겉더위를 능히 털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여름엔 행여나 평소 밉거나 적대감을 풀었던 상대의 잘못이나 실수를 고소해하지 맙시다.
상대방의 실패가 나의 성공씨앗이 될거라는 치사한 상상에서 벗어 납시다.
할수만 있다면 나의 땀과 수고로 상대편이 잘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겠다는 마음이면 막힘없이 열린 미래의 대로를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보다 남이 잘 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치레 인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마음이 곁에 있다면 또한 그를 보는 마음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내일은 항상 불확실합니다. 내일 어떤 일들이 나에게 이웃에게, 나라에 닥칠지 모릅니다.
민주 사회는 거룩한 상생의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누군가 국회의원 한사람은 한 국가라 하였습니다. 10만~30만 국민이 자신을 대리하는 사람으로 뽑아 입법부인 국회에 내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런 사람이 개인주의에 빠지거나 파벌 집단에 일원에 불과하여 그를 국회에 보내준 유권자를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3선 국회의원이요. 장래가 기대되는 한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때는 당시 보수여당의 씽크탱크라 할 수 있는 여의도 연구소장 까지 지냈던 분입니다.
극한의 선택을 하게 된 자세한 배경이야 알수 없지만 삶속에서의 값진 희생이 요구되는 정치상황입니다.
국민들의 인내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는듯합니다. 국회,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생즉사요, 사즉생’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정신을 요구합니다.
나라와 국민만을 바라보며 체면 명분을 과감히 버리는 큰 틀의 희생적 결단들이 느껴질 때 스스로는 사랑의 회복을, 국민들에겐 희망을 안겨줄 것입니다.
피폐할대로 피폐한 정치권에 나를 버려 이웃을 세우는 사랑의 인문학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바람이 정치권에 불어닥쳐 한여름 무더위를 잘 이겨낼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