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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유래와 무술년의 꿈

고운석 시인·주필
작성 : 2018년 02월 26일(월) 16:36 가+가-
벌써 설 명절을 보낸지가 일주일이 넘었다. 허나 따지고 보면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도 구정(舊正)이었다.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고 아세(亞歲)라 했음은 옛날 어느 시기에 동지를 정초로 삼았던 흔적인 것이다.
로마력(曆)을 택하기 이전의 게르만족의 정초도 동지였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도 고대 로마력에서 동지날이었으니 크리스마스도 서양의 구정일 수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원래는 게르만민족의 정초민속으로 예수의 탄생과는 관계가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민속축제인 테르미나리아도 고대 로마시대의 설날로 구정이다. 한데 지금 동지나 크리스마스나 테르미아를 구정이라 해서 이중과세라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어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 그토록 많이 역법(曆法)이 바뀌었지만 구력의 정초를 구정이라 하여 말살해 버리려 했던 적도 없었다.
다만 일제가 우리나라 구정에 집약된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이중과세라는 올가미를 씌워 짓밟으려 했던 일 이외에는. 그렇게 해서 신력(新曆)의 정초가 정착돼왔고 구정에서는 정초라는 관념이 서서히 증발, 그 구정에 묻어 내려온 각종 세시(歲時)민속만이 살아남았을 뿐인 것이다.
한동안 정부에서 구정에 노는 것을 이중과세로 낙인찍고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은 명분으로 삼았던 것은 사실상 설득력이 없는 무의미한 명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휴일로 정하지 않는 다른 명분으로서 선진국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더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진국 수준에 올라선 대한민국. 공휴일 속에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찾아 귀향을 한다. 이를 귀성이라 한다.
또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설빔을 입고 웃어른들께 세배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년을 단위로 매듭짓기 하는 설날의 종속변수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대개 대보름까지의 기간을 정해두고 윷놀이며 널뛰기며 연날리기를 했던 풍속들도 사실은 가변적인 것이다.
오래된 것이라 하여 궁극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시간의 매듭에 이름을 짓는 본래의 뜻에 부합하는 의미를 궁구하는 일이다.
윷놀이는 삶과 죽음의 풀이다. 사람은 한번 죽으면 다시 올 수 없다. 이를 불가역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계절은 순환하여 다시 온다.
작년에 왔던 봄이 올해 또 오는 이치다.
여기에 설날이라는 큰 기점을 만들어 불가역적인 세월을 가역적인 것으로 바꾸어버린다. 설날의 의례들이 어떤 형태 어떤 형식으로 구조화되건 본질적인 맥락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다. 가변적인 설날의 특성을 들어 마치 전통의 본질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려의 풍속이 다르고 조선의 풍속이 달랐던 것은 이런 이치에 따른 것이다.
지금의 풍속은 어떠해야 하나?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성찰과 의미와 맥락들을 담아내는 풍속이어야 할 것이다.
왜 일년이라는 시간을 분절하여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지난 한가위를 보내며 귀성의 의미를 캐어 물은 적이 있다. 진정한 명절의 의미가 바로 나 자신을 성찰하는 귀성(歸省)에 있다고 말이다.
시간을 이런 저런 형식으로 쪼개 마디를 짓고 그 매듭에 이름을 지어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조상을 살피고 미래의 후손을 살피며 현재의 나 자신을 삼가고 살피는(愼)날(日)로서의 설날, 우리는 무엇을 성찰하고 무엇을 매듭지어야 할까? 대개의 기점을 이루는 의례들처럼 옛것을 죽이고 새것을 시작하는 의미들 말이다.
하고 많은 대소사와 일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분단 70년을 훌쩍 넘겨버린 성찰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평창 올림픽에서 보여준 남북화해의 현장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북한의 전략이 출중했다느니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라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남북 정부가 공히 보여준 성숙한 태도들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이루어 내 쾌거라고 말이다. 향후의 행보나 외교에 장애가 있음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화해무드를 기반으로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벌써 분단 73년, 우리는 언제까지 이 분단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지속할 것인가.
이제는 일정한 매듭을 짓고 그 마디에 이름을 부여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설날은 다른 많은 의미들을 넘어서는 귀성의 시간이었다. 뿌리인 조상을 상고하고 또 뿌리인 후손을 살피는 시간이었다. 어두웠던 옛날들을 죽이고 화창할 새날을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무술년의 설날 아침, 북한의 세월을 죽이고 화해와 평화의 통일이라는 새날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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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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