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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의 인(因),과(果)
고운석 시인·주필
작성 : 2018년 02월 19일(월) 16:38 가+가-
이지함 1517(중종12)~1578(선조11) 학자·기인(奇人)자는 형백이고 호는 토정,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형 지번(之番)에게서 글을 배우다가 뒤에 서경덕 문화에서 수업했다.
아산 현감일 때에 걸인청을 만들어 관내 걸인과 노약자와 기민의 구호에 힘쓰다가 재직중에 죽었다. 하지만 기인처럼 살아 그는 사랑방이야기가 많다. 그 중인(因),과(果) 하나를 소개한다.
사색당파가 곪아 터지며 사화로 이어져 피를 튀기던 암울한 시절, 조선 팔도 강산을 떠돌던 훤칠한 선비가 마포 한강변 다 쓰러져 가는 흙담 움막집에 똬리를 틀었다.
그는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과거는 보지 않았다. 주역에 통달해 앞일도 내다볼 줄 알았지만 돈을 받고 자신의 지식을 파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기인이었다.
늦가을 자랑자랑한 햇살이 찬바람을 잠재워, 선비는 보던 책을 얼굴에 덮고 깜빡 낮잠에 빠졌다가 목구멍에 끓던 가래에 잠이 깨 문을 열고 캭 퉤- 가래를 뱉었다.
그 소리에 놀란 까마귀 한마리가 돌배나무 꼭대기에서 날아오르자 돌 배 하나가 떨어졌다. 이럴수가 있나! 배나무아래서 놀던 동네 아이 중에 열두어살 난 여식 아이가 없고 있던, 태어난 지 넉달밖에 안된 어린 동생이 정수리에 돌배를 맞고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여자에가 아이를 안고 제집으로 중종 걸음을 쳤지만 어린애는 죽고 말았다.
이튿날, 가을비가 추척추적 내리는 밤에 어미는 훌쩍훌쩍 울고 아비는 거적으로 둘둘 말아 싼 어린 자식 시체를 지게에 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선비는 독한 소주 한잔을 마셨다. 불덩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인(因), 과(果)! 씨앗을 뿌리면 싹이 돋아나듯이 과에는 반드시 인이 있게 마련이며, 이 인과 과 사이에는 업(業)이 있다.
책을 보지 않았으면 잠이 오지 않았고, 잠이 오지 않았으면 문을 열지 않았고 문을 열지 않았으면 캭 퉤~ 가래를 뱉어내지 않았고, 가래를 뱉지 않았으면 까마귀가 놀라 돌배나무 가지를 박차며 날지 않았고, 배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린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을 터인데! 선비는 안주도 없이 독한 소주를 계속 마셨다. 그 아이와 나 사이에 무슨 업이 있단 말인가! 선비는 괴로움을 술로 달래며 몇년을 더 살다가 죽음이 임박했음을 눈치채고 아들을 불렀다.
“네가 죽기 전에 네 아들에게 이 봉투를 전하며 일생일대에 가장 위급할 때 이 봉투를 뜯어보라 일러줘라.” 이 한마디 유언을 남기고 선비는 이승을 하직했다. 세월이 흘렀다. 선비의 바로 아랫대(代)는 그런저럭 살았다.
문제는 그 아랫대, 선비의 손자였다. 장가를 가서 한해 걸러 김장무 뽑듯이 아들을 쑥쑥 낳으니 흥부네처럼 밥 달라고 입을 벌리는 식구들이 오글거렸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고는 손바닥만한 산자락 밭뙈기 몇 마지기가 전부라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하다가 앞을 가로막은 보릿고개에서는 두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죽은 선비의 손자, 이 서방은 동헌으로 찾아가 관곡(식량)을 빌렸다. 관곡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나라의 곶간에서 식량을 빌려 이용하고 가을이 되면 갚아야 한다. 첫해 가을에는 곤장 다섯대를 맞고 나서 내년에는 꼭 갚겠다고 사또에게 철석같이 약속했다가 또 빈손으로 가 곤장 열대를 맞았다. 엉덩이가 피투성이가 돼 한달을 엎드려 누워있었다.
문제는 다음해 가을, “네 놈이 이 사또를 희롱하는구나!” 곤장 틀에 묶이기 직전 손자는 할아버지가 일생에 한 번, 위급할 때 퍼보라던 그 봉투가 퍼뜩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유지에 싸서 저고리 안섶 주머니에 넣어 몇바늘 꿰매서 품고 다니던 봉투! “사또 나으리, 이번 곤장에 소인은 목숨을 잃은 것 같습니다. 제 소원 한가지만 들어주십시오” 안주머니를 뜯어 작은 봉투를 꺼내 유지를 풀고 봉투를 열자, 그 속에 또 봉투, 다시 봉투를 벗기자 ‘사또는 보시오’ 이런 글이 쓰여 있어 형방이 그걸 또 한겹 봉투를 벗기자 ‘빨리 마당으로 내려오시오’ 사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는데 꽈다당! 비가 새서 썩은 서까래 하나가 떨어져 사또가 앉아 있던 의자가 박살났다. 기절초풍한 사또가 찬물 한사발을 마시고 일어나 그 봉투의 한겹을 또 벗기자 ‘내가 사또를 살려줬으니 사또는 내 손자를 살려주시오’ 토정 이지함, 바로<토정비결>을 쓴 그 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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