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년이 관객 500만명을 돌파하며 그 흥행 기세가 무섭다. 민주주의가 목을 죄이던 암울했던 시대, 31년 전 이른바 남영동 대공분실 박종철 서울대생의 고분치사 사건을 리얼하게 다룬 영화다.
몇몇 지인들과 이 영화를 관람했다.
물론 작성된 영화 시나리오의 내용이지만 그 시대를 회상해보면 사건 배경 전개가 무리가 없고 응당 그러고도 남았을거라는 공감을 함께 했다.
객석에는 처음부터 충격에 몸을 떨며 시종 울먹이는 관객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시절이 언론을 통제하고 민권을 얼마나 유린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고,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도 한켠으로 밀려났던 국민 주권시대가 노무현 대통령을 맞아 처음으로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 주는 시도가 있었으나 당연한 이 선언ㅇ로 정작 정권은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던가 기억이 생생하다.
이를 이 땅의 빅쓰리로 지목되는 보수 언론이 앞장섰고 아직도 이땅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보수언론의 모습은 별반 달라진게 없다.
지난 14일 청와대가 국가 정보원과 검찰, 경찰의 구조개편을 들고 나와 그동안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국민주권을 억압했다고 판단되는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빼고 경찰에 권한을 늘려주는 정치권력 개혁을 예고 했으나 거대야당으로 도사린 자유한국당이나 보수 언론이 이에 동참의지를 보이고 1987년식 사고를 벗지 않는 한 최후관문인 국회입법에 파란이 불을 보듯 환하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어떤 이유로도 민주국민의 주권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경제논리나 전가의 보도처럼 보수권의 무기 국가안보도로 저해되어서는 안된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경제논리나,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달린 국가안보도 국민주권실현으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가 무한경쟁을 벌리고 있는 이때 국민주권 확립과 적폐가 청산되고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에 정파의 이해득실이 작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언론과 정치권은 국민여론을 호도하거나 진영의 이익에 몰두해서는 큰 틀의 나라다운 나라 건설이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음을 여야 모두가 주목할 일이다.
여든 야든 최종 정치목적은 국민의 삶과 국민의 주권확립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영화 1987년 시대 되풀이를 막아야 한다. 이에 올 상반기중 권력기관 개편의 문재인 정부 의지는 막힘없이 실현되어야 한다.
검·경·국정원 개편방안을 발표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31년 전 오늘 스무 두살 청년 박종철이 물 고문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 당시 검찰과 경찰, 안기부는 합심해 진실을 은폐했다”며 “영화<1987>을 보시면서 시대의 참상에 대해 참담함을 금치 못했을 것”이라는 말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조수석은 “민주화시대가 열린 뒤에도 권력기관은 국민의 반대편에 서 왔다. 촛불시민 혁명으로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이 악순환을 끊고자 한다”고 했다. 백번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조작된 그런 영화는 볼 필요가 없다’ ‘사살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 근거다’라는 저항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당연히 협력해야할 정치파트너인 보수 야당은 청와대 발표에 “국회사개 특위를 무력화하려는 독재적 발상”이라며 발끈했고, 일부 보수 언론도 논평등을 통해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평창올림픽 북한 참가를 위한 남북고위급 회담을 두고도 미국과 한국을 이간시키려는 북한의 술책에 넘어가고 있다는 등, 미국내 일부 언론 또한 남국화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는 언론도 등장했다.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행을 통해 북한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설사 그들이 그런 목적으로 회담에 임했다 해도 사전에 이를 염두에 두고 함께 대책을 강구하면 될 일이다.
콘크리트 벽처럼 막혔던 남북관계 개선에 물꼬가 트였다면 보다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남북화해와 더 나아가 북핵 해결을 위한 협상의 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 대선때 여야가 모두 공약한 헌법개정 역시 다시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따져 개정작업을 미뤄가서는 안될 일이다. 무엇보다 민의를 받아들여야 할 국회가 국민여론을 정확히 수렴 다시는 소모적 논쟁을 통해 국론분열에 앞장서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