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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의 자선냄비와 크리스마스
김철수 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작성 : 2017년 12월 17일(일) 16:41 가+가-
2017년도 마지막 달인 12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딱 2주밖에 남지 않은 마지막 달력이 오 헨리가 쓴 단편소설 ‘마지막 잎 새’ 가 되어 매서운 삭풍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가냘프기만 하다.
도심의 거리에는 정복을 입은 구세군들의 손에 사랑을 일깨우는 종이 빨간 냄비와 함께 자리 잡고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가슴에 온정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백화점과 상가가 밀집해있는 거리에는 12월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크리스마스 캐럴이 경쾌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구세군(사령관 김필수)에서는 지난 12월1일 서울의 한 복판인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2017 자선냄비 시종식을 가졌다.
이달 말까지 1개월간에 걸쳐 불우이웃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올해로 126년의 역사를 가진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의 서부 항구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갑자기 재난을 당한 1,000여 명의 이재민과 선원들을 돕기 위해 조셉 맥피라는 구세군 사관에 의해서 시작됐다.
그는 급히 모금함을 찾던 중 선창가 앞 식당에서 사용하던 냄비를 들고 나와 길거리에 내걸면서 불쌍한 이웃을 돕자고 외치게 되었고 이곳을 지나던 시민들은 자기 주머니를 털어 동전을 한 푼 두 푼 냄비 속에 넣었다. 이렇게 모아진 정성어린 돈을 모아 당장 먹을 음식과 추위를 피할 이불 등을 사서 나눠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랑과 온정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28년부터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89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금년에는 우리나라 전국 주요도시 76개 지역에서 409개의 자선냄비가 운영되며 모금 목표액은 총 800만 명 참여해 지난 해 모금액인 109억 원보다 30% 늘어난 126억 원으로 잡았다.
구세군이 펼치는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냄비의 주인공들은 자기 생활도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따뜻한 온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작지만 정성의 푼돈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동전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의 분위기가 백화점 쇼 윈도우 위에서 반짝거리는 성탄트리나 거리를 경쾌하게 만드는 케럴 송보다 몇 배나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다.
아울러 전 세계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는 2천 년 전 이 땅에 아기예수로 오신 구세주를 매년 새롭게 맞이하면서 희망과 기쁨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을 경건한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는 의미가 있는 날이다.
크리스마스(Christmas)의 첫 번째 글자인 C 는 ‘케러링’(Caroling)으로 노래하는 계절이란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글자인 H는 ‘헬프’로 (Help)도움을 뜻한다. 세 번째의 글자 R은 ‘레버랜스’로(Reverrence)경배를 뜻하며, 네 번 째의 글자인 I는’인터세션’으로 (Intercession)중재기도를 뜻한다. 다섯 번째의 글자 S는 ‘사일런티’(Serenity)로 고요함을 뜻하며, 여섯 번째 글자인 T는’투르스트‘로(Trust) 확신을 뜻한다.
이렇게 해서 여섯 글자를 하나의 단어로 만들면 ‘크리스마스’(CHRIST)가 되며 여기에 ‘마스’(Mas)라는 축제의 뜻이 더해져 ‘크리스마스’(Christmas)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노래하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자들을 도와주며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조용한 가운데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신비적 탄생을 확실하게 믿는 올바른 축제로 맞이해야 된다는 갚은 뜻이 들어있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은 이와는 정 반대이다. 이 날은 젊음을 불사르며 술과 고성방가로 거리를 누비고 가족과 함께 조용히 지내지 못하며 시끄러운 밤으로 온통 지새우는 경우가 많다.
요즘 우리사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예상치도 못하고 예기치도 못하는 사건사고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고요와 평화가 사라지고 온갖 시끄러움과 혼돈, 그리고 어두운 소식들이 눈을 뜨기가 무섭게 무차별로 안방극장에서부터 난사되고 있다. 그래서 아기예수의 탄생은 더 기다려지는 인류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이 걷힌 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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