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관용은 사랑의 에너지
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17년 11월 30일(목) 16:50 가+가-
19세기 프랑스의 영웅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대의 이야기 그 당시 나폴레옹의 군사적 위치는 확고하였고 프랑스 국민도 그에게 존경을 하였으며 부하들 또한 장군의 지휘력에 모두 단합되어 있었다.
그의 명령은 곧 하늘의 명령처럼 받아 들여졌고 명령을 어긴자에게는 참혹한 처벌이 잔혹할 만큼 내려졌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시베리아 벌판을 향해 진군하고 있을 때 그날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새벽 두 세시경 나폴레옹은 막사를 나와 초병들이 잘 지키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야간 순찰을 했고, 가는곳마다 모두 피곤을 무릅쓰고 열심히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 흡족했다.
그러나 마지막 초소에 이르렀을 때 초소안에 병사는 깊이 잠들어 있었고, 총은 옆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때 나폴레옹은 그 자리에 들어가 그 초병 대신 총대를 메고 보초를 섰다.
그 초병이 깰때까지…. 이윽고 새벽이 되자 그 초병은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에 감히 접근하기조차 두려웠던 장군께서 자기 대신 보초를 서는 모습을 보고 그만 사색이 되었다.
아무말도 못한 채 무릎을 꿇고, “죽여 주십시오” 이때 초병을 한참 바라보던 장군은 총을 초병의 어깨에 걸어주며 “ 이 순간 네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와 나 밖에는…. 그래서 너를 용서할 수 있다” 이말을 남기고 장군은 총총히 사라졌다.
이튿날 이 초병은 러시아 원정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죽었다.
조국 프랑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장군 나폴레옹을 위해서….
우리 인간사회에 어떤 명령이나 법보다 이런 인간적인 관용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의 주치인지 모른다.
힘이나 권위보다 용서와 애정으로 사회 질서를 확립해 가는 것은 결국 사랑의 힘인 것이다.
우리의 참된 삶의 가치는 근본을 벗어나지 않는 질서속에서 서로 믿고 사는 것이다.
인간적인 사랑을 나눔에 있어서 관용이야말로 단순한 용서를 뛰어 넘는 용납이요. 삶에 있어 최고의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노자는 원한을 갚는데 덕으로써 하라고 했다.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속에 복수심이 깃들 수 있다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 수 있으나 덕스러움의 분량만큼, 사랑의 분량만큼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관용은 자신이 손해보고 희생하기 까지 한 용서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타인의 잘못에 대해 관대하라. 잘못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완전하지 못한 것이 사람이라는 점에 유념하라. 언제나 정의를 받아들이지만 정의만으로 재판한다면 우리들 중 한사라마도 구함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용서, 그것은 가장 수준 높은 복수이다. 관용의 마음이란 사랑과 이해 그리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관용의 마음이란 언제나 사랑의 뜨거움과 이해의 폭 넓음과 용서의 아량에서 이루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관용의 마음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 됨됨이의 수양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관용은 용서를 넘어 가슴에 사랑으로 품는 것이고 이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감을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 사회는 불신과 모순, 갈등이 팽베하며 이로 말미암아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삶을 불행의 늪에 빠뜨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조물주는 인간을 연약한 존재로 창조했다. 이는 서로 의지하며 용납하며 관용하며 사랑을 베풀며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서로가 단점보다는 장점을 높이 사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관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기와 경쟁의 화신이 되고 상대방을 무시할 때 관용처럼 어려운것도 없게 된다. 관용은 내게 주어지는 에너지다.


편집팀 기사 더보기

tdh1234@naver.com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