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에든버러에 살았던 윌리엄 브로디는 석공 조합의 조합장이자 시 의회 의원으로 청렴하며 근검한 독신 생활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랬던 브로디가 낮에는 훌륭한 이웃이자 영웅이었지만 밤에는 악랄한 도둑이며 악당으로 무려 2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이중생활이 밝혀지면서 1788년에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그 후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조합장 브로디의 이중생활’을 희곡으로 펴내 연극으로 공연하였고 2년 후에는 최초의 다중인격을 소재로 오늘날까지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소설로 발전시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브로디의 일화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 말을 증명하며 많은 이의 관심과 흥미를 끌었습니다.
어느 날 아프리카 정글에서 아이들이 새끼 표범과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이건 표범이야. 이 표범이 크면 사람을 해치게 돼. 그래서 죽여야 돼” 라며 창을 들고 추장은 표범을 찔러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추장님, 표범을 살려 주세요. 이 표범에게 고기를 먹이지 않고 죽만 먹여서 아주 순해요.”
“안돼, 죽여야 돼.” “추장님, 표범한테 앞으로도 죽만 먹일 테니 제발 죽이지 마세요.” 추장은 사정하는 아이들을 보며 너무 섭섭해 할까봐 표범을 살려줬습니다.
“추장님은 괜히 그러셔. 죽만 먹여서 이렇게 순한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세 아이들과 표범이 산언덕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한아이가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가는 동안 표범 먼저 뛰어 내려가 아이의 무릎에 줄줄 흐르고 있는 피를 혀로 핥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표범이 잠자고 있던야성이 솟구치더니 피를 핥는 것이 아니고 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아이 가슴을 찢고 잡아먹고 다른 아이들마저 잡아먹었습니다. 표범이 죽만 먹을 때는 그 야성이 덮여져 있어서 순해 보였지만 피 맛을 보게 되면서 본능이 깨어나 잔인함이 드러났습니다.
치킬 박사와 하이드를 통해서도 인간이 겉으로는 선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 들어가 보면 악한 것만 존재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출생 자체가 죄악 중에 출생했기 때문에 아무리 각오하고 결심해도 선한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음란한 마음과 미움이 올라오고 시기와 질투가 나오는 것처럼 살인한 사람들은 악한 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악한 일을 하도록 이끌어 갑니다.
농부들이 과일 값이 내려가면 나무를 뽑아내고 자기 땅에 값이 되는 새로운 과일나무를 심어 많은 농가 소득을 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도 항상 더럽고 악한 죄악의 열매만 맺는 죄악덩어리인 나무를 뽑아내고 새로운 나무를 심어야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릇과 같아서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이 나옵니다. 인간이 선을 추구하지만 선한 삶이 안 되는 것은 참된 선이 없기 때문인데 자신을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참된 선을 받아들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선하게 살아갑니다.
지구상에 어떤 과실나무도 한 나무에서 두 가지 종류의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것처럼 사람에게는 선도 있고 악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떠나 참된 행복과 선이 있는 곳으로 마음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도달하면 마음이 변화되고 새 마음이 오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