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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삶속에서 청렴의 길을
정병용 영광소방서 홍농센터장 소방경
작성 : 2017년 08월 28일(월) 18:01 가+가-

공직사회에서 청렴이란 단어를 모르는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청렴은 공무원이 지켜야할 의무이나 부정부패와 비리사건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여기 청백리의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곡 박수량과 지지당 송흠 선생이 그 본보기다. 모두 오랜 세월을 공직자이면 정치인으로 살았다. 아곡 선생은 38년, 지지당 선생은 51년 동안 고위 관직을 지냈다. 두 분들은 뇌물을 받지 않았고 접대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청백리의 표상으로 후세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아곡 박수량(1491-1554년) 선생은 조선 성종 22년 장성 황룡에서 태어났다. 24세에 과거급제를 하고 고부군수, 병조참지, 동부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형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럼에도 선생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길이 남아 있다. 청백리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벼슬과 공직은 물론 이름도 새기지 않은 백비는 청백리를 상징하는 유물이 됐다.
송흠(1459-1547) 선생도 청백리와 효를 다한 선비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조선 세조 5년 장성 삼계에서 태어났다. 34세 문과급제 후 나주목사, 승정원 승지, 담양부사, 전라도관찰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참찬 판중추부다 등을 지냈다. 무려 51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도 처자가 굶주림을 면한 정도로 청빈하게 살았다. 당시 지방관이 다른 고을로 부임할 때 말 일곱 마리를 받는 게 관례, 하지만 그는 자신과 어머니, 부인이 타고 갈 말 세 마리만 받고 나머지는 사양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백성들이 삼마태수라 부르며 높이 받들었다. 위와 같이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청렴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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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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