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을 아세요? 물으면 물론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충일이 언제부터 지내는 추모행사에요? 묻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답할까.
세월호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시민 중에 과연 현충일이 제정된 날을 알고 있을까.
현충일은 우리나라의 유흥가도 문을 열지 않는 유일한 추모의 날이다.
달력에 붉은 글씨와 휴일이라는 점에는 모른 이가 없다.
현충일은 1953년부터 육군, 해군, 공군 합동으로 전몰장병추도식을 해왔다.
1956년부터는 대통령으로 6월6일이 ‘현충일’로 개칭되었다. 1982년 5월 15일부터는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일로 정하여 호국영령의 명복을 빈다.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한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과 현충일에 대하는 자세에 한번쯤 집고 넘어가야 한다.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총리가 뉴우스 화면에 비추는 양복 깃에는 세월호의 노랑리본이 달려있다.
지금도 상당수 의원의 가슴에는 노랑 리본이 달려있다. 거리에 나가면 젊은이, 나이든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가슴에, 또는 가방에 리본이 달려있다.
과연 저들에게 6월6일의 현충일은 어떤 마음으로 다가 설까. 묻고 싶다.
세월호와 현충일을 비교의 키워드로 삼는 자체가 어불 성설이다.
세월호의 아픈 영령을 폄하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당선이 되고 제일 먼저 세월호가 인양된 목포항으로 갔다. 이 또한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광화문 광장에는 지금도 세월호의 텐트촌이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저들에게 추모의 시간이 유효한가. 광화문의 세월호의 텐트는 언제부터인가 성역이다.
노랑리본은 마치 국가의 상징물로 되어버렸다.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는 말한다. 교회의 교인이 12명이 세월호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고훈 목사는 ‘국장도 아닌 세월호 추모가 이렇게 장기적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지적 한다. 세상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의하여 움직인다.
인류를 구원 했다는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에 못 박힌 날도 단 하루만 기념일이다.
석가도 그렇고 모든 위인에게도 그렇다. 세계 역사의 유래가 없는 장기간의 추모제는 세월호 사건이 유일무일 하다.
역사 속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수혜자다. 그런데 문제는 피해자는 늘 선명하지만 가해자와 수혜자는 불분명하다.
나는 세월호의 피해자를 보면서도 그렇다. 피해자 중에 기간제 교사는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영이 당선되며 기간제 교사인 선생님에게 수혜자의 해택을 주도록 조치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충일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현충일의 피해자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절차에 의하여 추모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으로 피해를 입는 피해자나 피해가족은 기간이 없이 수혜자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
세계역사에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3년이 넘는 기념일과 그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여 나가고 있다.
박종철 엄마는 말했다. 당신의 아픔은 3년이었지만 나의 아픔은 30년이었다고 말한다. 박종철 사건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겼다.
그러나 그를 위하여 광화문 광장에 3년이라는 텐트를 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러한 마음에서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텐트에 대한 상황은 다시 한 번 더듬어 냉정한 입장이 되어야한다.
다시 현충일, 본문으로 돌아간다. 나라를 위하여 바친 순국선열의 아픔은 그들을 위로하기보다는 기리는 마음이 커야한다.
현충일, 제정된 즈음에는 학교와 보훈 단체가 충혼묘지를 찾아, 묘비를 닦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 또한 예전 갖지 않다. 보훈에 영령들을 위한 우리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세상에는 순리가 있다. 무엇이 옳고 그름에 대하여 지도자들이 앞장을 서야한다. 표를 의식하거나 분위기에 휩싸여 눈치를 보는 행위는 위선이다.
내안의 것을 받든 것이 무엇인지를 분간해야한다.
진정한 순국의 국가유공자에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에 질문이 필요하다.
석가는 말했다. 모든 것이 지나치면 ‘불의’가 된다하였다.
칭찬도 한계가 있다. 노랑리본 착용의 시민. 자신의 조상과 순국선열에게 보내는 마음이 크고 넓다면 더 할 나위는 없다.
그러나 순간의 분위기에 내안의 존재를 팔고 있다면 심각한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