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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에는 사람이 갖는 특성이 있다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17년 05월 31일(수) 17:20 가+가-
아프리카 정글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추장이 마을을 걷다가 아이들이 표범 새끼를 데리고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얘들아, 그건 표범 새끼야. 자라면 언젠가는 위험해. 죽여야 해.” “추장님, 죽이지 마세요. 이 표범 새끼는 아주 순해요. 우리 집에 데리고 온 날부터 죽만 먹였어요. 그래서 순하단 말이에요.” “그래도 자라면 무서운 표범이 돼. 죽여야 해.” 추장은 창으로 표범을 죽이려고 했다. “안 돼요! 추장님, 이 표범은 토끼처럼 순해요. 죽이지 마세요!” 아이들의 간청에 추장은 창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 표범은 자라면 무서운 표범이 돼.”
“그래서 우리가 죽만 먹이잖아요. 괜찮아요. 아주 순해요.”아이들의 애원에 추장은 안심이 되지 않았지만 그냥 두고 갔다. “추장님은 괜히 그래. 표범 새끼가 이렇게 순한데…. 그 대신 우리가 절대로 고기를 먹이면 안 돼. 무서운 표범이 되니까. 죽만 먹여야 돼.”아이들의 말대로 표범은 순하게 자랐다.
큰 표범이 된 후로도 죽만 먹여서 아주 순했다. 그날도 아이들 셋이 표범을 데리고 숲으로 갔다.
그런데 앞서가던 아이가 돌을 잘못 밟아 미끄러지면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다른 두 아이가 빠르게 언덕길을 돌아서 언덕 아래로 달려갔고, 아이들과 함께 가던 표범은 바로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아이는 무릎을 다쳐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표범은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로 다가가 흐르는 피를 혀로 닦아 주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피가 표범의 혀에 닿으면서 표범의 몸에서 야성의 쾌감이 솟구쳤다. 이제 표범은 피를 닦아 주는 것이 아니라 피를 빨고 있었다.
지금까지 잠자고 있던 표범이 가진 본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죽만 먹여서 죽은 것 같았던 표범의 야성이 피 맛을 보자 솟구치기 시작했다.
표범은 피를 빨고 또 빨았다. 피 맛을 본 후 그때까지 순하디순했던 표범이 무서운 맹수로 변했다. 정신없이 피를 빨았고, 피는 표범의 입으로 들어가면서 맹수의 본능을 계속 일깨웠다.
피를 빨던 표범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포효하면서 앞발을 높이 치켜들더니 아이의 앞가슴을 찍어 눌러서 양쪽으로 쪼갠 후 미친 듯이 내장을 씹어 삼켰다.
그런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두 아이는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표범은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고 앞에 오는 아이를 덮쳐 죽이고, 뒤따라오는 아이에게 덤벼들었다.
“표범아, 왜 이래?” 하며 그 아이마저 숨이 끊어졌다.
어린 표범이 죽만 먹고 자랄 때에는 아주 순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에 있는 맹수의 기질이 죽은 것은 아니다.
표범이 피 맛을 볼 때 그때까지 숨어 있던 맹수의 기질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람이 갖는 특성이 있다. 우리 마음에는 종종 미움도 있고, 시기도 있다.
사람이 선을 행할 때에도 마음에서 시작되고, 죄를 범할 때에도 마음에서 시작된다.
음란한 마음이 없으면 간음할 수 없고, 탐욕이 없으면 도둑질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음을 무시해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도 간음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탐욕이 있는데도 도둑질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이혼하거나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을 닫고 자기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산다.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반대로 자기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만 주어도 삶이 굉장히 좋아진다. 다
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 서로 마음이 흘러 가까워진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모른다.
문제 속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화하기를 싫어하고 자신만의 생각 속에 빠져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닫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어차피 사회에서 살아야 하기에 혼자서 살 수는 없다.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흐르고, 그러면 서로 이해하게 된다. 대화 없이 ‘저 사람은 고집이 세! 나하고 말이 안 통해! 저 사람과 이야기하면 괴로워!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하고 마음을 닫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이며,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오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음란한 마음이 있는데도 죄를 범치 않으려고 하는가?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하고, 마약이나 도박을 하지 않으려고 하며, 게임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끄는 힘을 이기지 못해 결국 거기에 끌려가고 만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새 마음을 넣어 주시면 달라진다.
음란하고 방탕한 마음 대신 거룩한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죄를 지으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죄에서 벗어난다.
간음하지 말아야지, 도둑질하지 말아야지, 도박하지 말아야지, 게임하지 말아야지’ 하고 애써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음란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그 마음이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다.
우리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마음을 얻어 우리 안에 있던 악한 생각이 떠나가고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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