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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의 언어가 국격이다
최창일 광운대 명예교수·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작성 : 2017년 05월 23일(화) 17:21 가+가-
“내가 이러려고 한글을 창제 하였는가” 세종대왕께서 혀를 차지 않을까 싶다.
19대 대선에서 품격 잃은 언어의 상실을 목격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대중 속에 그 후유증이 나오기 시작한다.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모제가 광화문에서 있었다.
가수 김장훈은 무대에 올라 욕설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공연에 앞서 경찰과 주차문제로 시비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무대에 올라 부당함을 이야기 하며 xx 라며 욕설을 거르지 않고 쏟아 냈다.
다짜고짜 나온 욕설에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장에는 가족단위도 많았다. 일부 참가자는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김씨의 욕설은 대선의 후보자 언행과 연결선상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는 말처럼. 칼럼 자는 대선은 가도 그들의 언행은 남는다고 밝힌바 있다.
말이 씨가 되듯 1만 명이상이 모인 광장에서 여과 없이 욕설이 퍼부었다.
이날 노무현 재단 주최로 열린 추모 행사는 안치환과 조PD 크라잉넛 등 유명가수들의 공연도 이어지는 자리였다.
그러나 김씨가 마이크를 잡으면서 축제의 분위기는 싸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김씨의 욕설은 여과 없이 동영상으로 확산이 되었다. 주변의 권고인지는 몰라도 공연 말미에 김씨는 고 노무현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사과 하듯 말했다.
이 또한 대선의 후보자, 홍준표의 모양 세와 너무나 흡사하다. 사과를 하려면 광장의 시민에게 해야 한다. 허공인사처럼 고인에게 사과는 진정한 사과도 아니다.
새로운 것이나 가치 있는 행위는 인정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가치가 없는 것들이 더 쉽게 퍼지는 것이 무서운 일이다.
사회적인 의사가 개인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라면 소멸하는 것이라고 피카소는 어느 날 말했다.
교실안의 하품이 전염이 되어 같은 반 모두가 하품을 한다는 속설도 있다. 사회의 나쁜 규범은 그 사회의 동심까지도 무너뜨리고 만다.
노래는 사람들의 위로다. 위로하는 뮤지션이 욕설을 하고 다시 노래를 한다는 것은 무슨 논법으로 이해를 할까.
돼지 흥분제 사용을 여과 없이 회고록에 기록한 홍준표. 자신이 저지른 일을 타인이 한양, 무심의 사과논법이다.
그런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내게 있어 소중한 것들, 존중하는 마음이면 언어는 품격을 가지게 된다.
홍준표씨가 국민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받드는 사람이라면 진지한 언어를 구사 했을 것이다. 공들인 언어 사용은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평소 욕을 많이 하던 사람이 눈을 감으면서도 욕설이 담긴 유언을 남겼다는 말이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일생이다. 그리고 부모의 유산이 된다. 지도자들의 언어 사용은 후세의 유산이 된다.
예술에도 항의가 필요한가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규범은 선한 예술에게도 항의를 하며 진보는 거듭된다.
더욱이 규범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반성을 요구 하거나 격리시키는 것이 옳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규범을 어긴 자를 너무나 쉽게 용서한다.
그래서 그들은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지식은 넘쳐나도 지혜가 모자라는 사회, 헛똑똑이는 많아도 참된 바보가 씨가 말라가는 풍토에선 세종대왕과 같은 초월의 위인이 나올 수 없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소수의 지도자들의 탓이다.
권력의 욕심에 눈이 멀어 언어의 순화는 아량 곳이다. 자신이 한 말이 씨가 되고 그 씨는 미래의 젊은이에게 양식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지도자다.
삶이란 커다란 신비다. 커다란 신비를 만드는 것은 어른이다. 키 크고 육신이 커서 어른이 아니다.
우리국민은 지난해 탄핵으로 심히 심신이 고달프다. 듣고 싶지 않는 뉴우스가 우리를 힘들게 하였다.
광장의 촛불의 결과로 예측하지 않는 대선이 되었다.
스탠딩 토론에 나선 후보들은 상대의 말꼬리와 과거의 흔적을 들썩이며 정책 토론이 되지 못했다.
국민은 다시 짜증의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무심하듯 시간은 흘러 대선은 큰 무리 없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는 모두가 품격의 언어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품격의 언어는 국론을 통일 시킨다. 그리고 관계의 힘으로 보이지 않는 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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