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16일,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가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일어났습니다.
권총 두 자루로 10여분 만에 61명의 사상자를 내고 자살한 범인 조승희(23)는 어릴 적부터 외톨이로 지내며 대학에 들어가서도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채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았습니다.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어서 학교 내에서 그의 속을 아는 학생들이 없었고 출석부에 이름 대신 물음표를 적어 넣는 바람에 ‘물음표 학생’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을 걸어도 ‘응’이나 ‘아니’처럼 한 단어로만 답했고 그와 같은 교류의 단절이 결국 그를 희대의 살인마로 몰고 간 것입니다.
사건 이후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랐는데 “그가 남긴 글이나 평소의 언행, 주변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일방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공격적이고 성적인 본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와 훈육에 의해 순화돼 사회에 적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만의 공격적, 파괴적인 공상을 순화시키고 교정할 기회가 없어 위험한 공상을 스스로 정당화시켜 우발적 사고를 저지를 수 있다.”(신의진 교수, 연세의대 정신과).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정부 청사와 우토야 섬 청년 캠프 행사장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사상 최악의 테러는, 무려 200여명의 사상자를 내며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이민자에 대한 ‘증오 범죄’로 알려진 테러의 범인인 안드레스 브레이빅(32) 역시 2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지 못하고 어머니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혼자 폭력과 살인, 파괴가 있는 게임에 탐닉하면서 철저히 마음이 고립된 가운데 살았고 자신이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이민자 출신 학생들과 그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는 사회에 적개심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후 첫 사람 아담을 보시며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인류 최초의 나쁜 것은 독처이며, 하나님은 독처를 막기 위한 돕는 배필로 하와라는 다른 사람을 허락하셨습니다.
돕는 배필은 ‘에제르(돕는 자)’라는 말과 ‘페네게도(적합한)’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아담에게 서로의 독처를 막는, 각자에게 적합한 돕는 배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독처를 방지하기 적합한 돕는 배필들을 허락하셨는데 돕는 배필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사람들을 무시하고 마음의 대화를 단절한 채 독처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불행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에도 한 번씩 부딪쳐야 정신건강에 굉장히 좋습니다.
부담스러운 일을 자꾸 피하다 보면 마음이 고립되어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마음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컴퓨터게임 같은 것만 즐겨합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신도 나고 성취감도 있기 때문에 자꾸 빠져들어 부담스러운 일을 더 피하고 싶어지고 사람에게서 인간미를 느끼지 못해 사람에 대한 매력이 떨어집니다.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만나는 것도 싫어져 더욱 고립됩니다.
또 자기를 과신해서 고립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네가 뭘 안다고?’ 하고 마음을 닫기 때문에 고립된 삶을 삽니다. 고립된 세계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어오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마치 소용돌이 속에 빠지면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이러지 말아야지!’ 해도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나 조언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피상적으로 듣기 때문에 효과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마음이 고립된 채 살면서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믿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 대화가 차단되면 고립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립의 치료약은 다른 사람과 마음의 대화를 해야 합니다. 마음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너를 만나 기쁘고 즐거워’ ‘어제 내가 참 미안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지난번에 너를 섭섭하게 한 것 같아.’ 이처럼 언어라는 도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부부간에, 형제간에, 친구간에, 사제간에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느끼게 됩니다. ‘그랬구나.’ ‘그때 힘들었겠구나.’ ‘오늘 즐거웠겠구나’ 상대방의 마음을 알 때 이해하고 믿게 되고 서로 마음이 흐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겉도는 말로만 대화를 합니다. 마음에 없는 이야기는 거짓말과 다름없고 상대방을 속이는 것입니다.
서로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이 전선에 전기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를 때 인간은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