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서하는 것은 너그러움이고, 용서 받는 것은 은혜로움이라 여긴다.
용서란 죄의식과 창피함에서 해방시키는 선심행위로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용서하는 너그러움은 자비를 베푸는 주체가 되는 것이고, 용서를 받는 은혜로움은 사랑을 받는 수혜자가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함에도 어떤 경우에는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거나 진솔하고 진지한 사과가 전제될 때에 용서가 가능한 경우도 허다하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경우는 대개 윤리적 도덕적 가치관이 완전히 말살된 행위에 대한 경직된 대응 태도라면, 진솔한 사과를 필요로 하는 용서는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자성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유연한 반응태도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용서와 사과의 차이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용서란 사과를 받지 않아도 용서하는 경우, 사과와 상관없이 용서하는 경우, 사과를 기대하고 용서하는 경우, 사과를 해야만 용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용서에 대한 태도에는 “절대 용서 안할 거야” “언제든 용서해버릴 거야” “먼저 용서할 거야.” “사과를 받아야 용서할 거야.”라는 행동의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용서의 행동패턴은 용서하려는 사람의 의식에 따라 어느 한가지만을 고수하려고 하거나 가해자 측의 태도에 따라 용서의 유형을 선택해 갈 수도 있다.
따라서 용서란 일방적일수도 있고 쌍방적일수도 있다. 하지만 사과란 가해자 측에서는 거절이나 보복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누군가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드러내고 관용을 애원하고, 피해자 측에서는 상처받은 것에 대한 인정과 마음에 품어두었던 원한을 풀어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과는 반드시 쌍방의 의사교류에 의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성립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과를 제안하고, 협상하고, 수용하는 과정은 긍정적 체험을 하게 하는 용서로 가는 길목들로서 사과란 용서를 위한 정신적 지혜인 것이다.
그런데 성공한 사과와 용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과와 용서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참회’가 확인되어야 한다.
참회란 부정적 삶으로 이어지는 악과 죄를 거부하고 긍정적인 삶으로 이어지는 선과 정의로 되돌아가겠다는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사과는 참회의 디딤돌이며 용서를 있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용서든, 쌍방이 서로 내리는 용서든, 사회적 용서든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과와 참회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완벽한 사과, 진솔한 참회, 완전한 용서로 이어지는 화해와 통합의 소통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고백하면서 해악을 끼친 것에 대한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낸 참회를 관대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용서는 증오, 분노, 원한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해소함으로써 보복, 복수, 보상에 대한 기대를 떨쳐버리고 연민, 자비, 사랑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자발적으로 발휘케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가해행위의 심각성, 사과의 진정성, 인격적 도량에 따라 부분용서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용서가 이루어졌다 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한 처벌까지 면해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면’과 ‘용서’는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특히 화해 없는 용서는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화해 없는 용서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과를 받지 않고 가해자를 용서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들을 살펴보면 가해자가 사망해버렸을 때, 가해자가 처참한 삶의 나락에 떨어져버려 연민의 정을 느낄 때, 가해자가 뻔뻔스럽게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려들지 않을 때, 상대에게 잘못을 저지르도록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여겨질 때, 자식이 성장해서 부모의 입장을 이해했을 때, 피해자가 원한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사과 자체가 심적 부담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피해자가 회피하고 싶은 사람일 때, 사과로 관계회복이 이루어지게 되면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미리 막아버리고 싶을 때, 가해자가 잘못에 대한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을 위치에 있다고 여겨질 때 등등일 것이다.
화해 없는 용서란 진지한 화해의 과정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용서로서 가해자가 사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또 다른 상처나 피해를 받고 싶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사과 없는 용서라 할 수 있다.
화해 없는 용서란 상대의 참회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쌍방 화해가 불가능할 때 피해자 내면의 화해만으로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용서로서 피해자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측은지심을 발동하여 부정적 감정을 부려버리는 피해자 내면의 용서와 화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