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봉숭아 학당 같은 이야기를 해보자. 대통령이 긴급 안보장관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지하 벙커에 모인 18명중 대통령, 국무총리, 국가정보원장, 여당대표 등 무려 15명이 병역미필자였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우리사회의 일상이다. 이러한 일이 알려질 때마다 국민은 좌절하지만 그렇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대통령 권한 대행 병역 미필자가 군대를 방문하였다. 건빵을 받아들고 과거의 맛과 변함이 없다고 하여 세간의 웃음이 되고 있다.
참담한 현실은 병역 미필, 대통령 권대행이 차기대통령 여론조사에서 7%를 보인다. 대권 대상의 3위다. 병역미필자에 분노한 국민은 어디 갔을까? 오늘도 내홍을 겪는 국민은 이 땅에서 이민을 간 것일까.
불공정을 거두어 내고 만민 평등의 이념이 구현되려면, 우선 실질적 기회의 평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회의 평등을 만들려면 선택자의 바른 자세가 필요하다.
특검이 연일 짐승의 시대를 청산한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고 있다. 연인원 1천만이 촛불을 들었다. 다시는 어설픈 지도자를 뽑지 않겠다는 촛불이다.
물론 촛불이 아닌 태극기를 드는 국민도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백번을 양보하여도 군 미필권한대행과 탄핵의 대통령이 추천한 총리를 차기 대권 주자로 지지한다는 국민의 태도를 이해 할 수 없다. 유모차를 끄는 어머니의 말은 다음세대의 우리 아이에게 불평등의 지도자에게 맞길 수 없다고 분노를 자아낸다.
J.S. 밀은 그의 사후에 출간된 <사회주의론>에서 출생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가 좌우되는 세태에 격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19세기 자본주의 분배제도를 비판하면서, 당시 사회가 경주에서 등수에 들지 못한 사람을 살해하는 야만적 경기와 다름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유경쟁이라는 미명하에 19세기보다 더 가혹한 불평등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자조 섞인 ‘흙수저’ 이야기처럼, 이제 가난은 노력과 상관없이 쉽게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개인의 삶에 견고하게 그려져 대물림되는 것을 자초 하고 있다.
지금 이시간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이 벌인 추악한 형태를 모두가 분노한다.
그런대도 황교한 대통령권한 대행에게 지지의 의견을 보이는 것을 쉽게 납득할까.
만약에 황교한 대행이 대선의 출마를 한다면 매우 위중한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다. 촛불은 거대한 들불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최고의 지배 원리가 자유 경쟁이라면, 그 경쟁은 누구라도 수긍하게끔 공정해야한다.
경주를 시작하기 전부터 불평등을 안고 출발한다면 진정한 자유 가치는 이미 훼손 된 것이나 다름없다.
소위 국회의원이라는 김진태는 정의가 경제보다 중요하느냐고 광장에서 외친다. 삼성 부회장의 수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참으로 가상한 두뇌의 소유자다.
그도 판사로 사회를 시작한 자다. 그러한 세력들이 여의도에 보내진 현실이 짐승의 시대를 만들고 있다. 황교한 대행이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지도자라면 권한 대행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옳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온갖 편법과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 받고 지도자의 길에 오른다면 우리 사회는 우주조차 돕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라고 살렘왕이 양치기 산타고아에게 했던 이야기가 한국에서는 자조와 비웃음이 되고 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이룰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간절히 원하거나 노력하는 자에게는 좌절을 주고 있다.
한국에는 3천5백 여 개의 신문이 있다. 거기에는 조, 중, 동 이나 KBS, MBC, SBS 공중파 방송과 종편도 있다.
들어보지도 못한 1인 인터넷 방송에서 박근혜대통령의 인터뷰를 해외토픽은 일제히 다루고 있다.
세계의 언론은 한국을 비웃고 있다.
짐승의 시대를 단절하는 방법은 지도자가 아니다. 지도자를 뽑는 국민이다.
짐승이 아닌 진정한 리더자, 정직한 지도자를 국민이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