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일탈이나 귀감이 되지 못하는 행동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각은 따갑기 그지없다.
그만큼 일반인들보다 성직자들이나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거는 국민들의 도덕적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은 분량의 부정을 저질렀거나 잘못을 저질러도 그 당사자가 성직자가 되었을 경우 일반사회의 지탄은 신랄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날 안티 기독교세력이 생겨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빠른 속도로 번지게 되고 극히 일부 소수의 잘못으로 인해 수많은 성직자나 종교지도자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여기 우리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어느 목사의 5무(五無)장례식이 있었다.
지난 10일 부산에 있는 고신대학교 부속 복음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금년 85세로 세상을 떠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이자 대학원장을 역임한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 신학자인 허순길 목사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빈소에는 일반 장례식장의 빈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소식을 듣고 찾아 온 문상객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첫째는 영정이 없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비치된 부의함도 없었고 꽃 한 송이조차 없었다.
또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측 목회자를 양성하는 고려신학대학원의 원장이었던 허목사의 장례식인데도 고인을 위한 예배조차 없었다.
다만 빈소에는 고인이 살아생전 사용하던 성경책과 찬송가만 달랑 빈소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빈소의 벽에는 ‘장례예식 알림’ 이란 제목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부의금과 조화를 사양하고 영정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유족들과 위로의 문안을 하는 것으로 상례를 대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족일동.’ 이 안내문을 읽어본 다음에야 조문객들은 고 허순길 목사의 영정이 장례식장 빈소에 없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유족들은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에게 A4용지 앞뒤 면을 가득채운 별도의 안내장을 따로 나눠주었는데 그 안내장에는 고인의 마지막 유작인 ‘개혁교회질서 해설- 돌트교회 질서 ’해설 중 제64조 장례 부분이 인용되어 있었는데 “장례는 교회의 일이 아니고 가족의 일이다. 그래서 예배가 아닌 그냥 예식으로 치러야 한다.
교회의 장례예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의식으로 사제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교회장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보통 장례예배 설교나 추모사가 하나님 말씀보다 죽은 자의 공로를 내 세우기 십상이고 교회에 해를 끼친다”고 허순길 목사는 평생 신학과 복음에 정진해왔고 500년 전 종교개혁 당시의 개신교처럼 청빈하고 엄격하게 신앙을 지키며 살아왔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평생 동안 예비 목회자들을 가르쳤으며 퇴임 후에는’네델란드 개혁교회’등 다양한 주제의 저서 집필과 강연을 해왔다.
살아생전 고인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빈소는 그야말로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고 조문객들은 한 송이 하얀 색 국회 꽃 하나 없는 빈소에서 말없이 목례만 하고 돌아서야 했다.
고 허순길 목사는 생전에 우리나라 혼인문화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남들에게 자랑하듯 축화와 축전, 그리고 축의금으로 도배되는 허례허식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허 목사의 큰 아들 성진(56)씨도 아버지의 평소의 방침에 따라 10년 전 자신이 혼인할 때 축의금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한다.
노숙인의 장례식과도 별반 다름이 없는 발인예식을 마치고 장지로 운구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은 처음 겪은 장례식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살아생전에도 그렇게 살았고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 곁에 돌아가는 고인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된 것이다.
고인의 약력소개나 추모사, 그리고 조사조차 없이 장지로 떠나는 고인의 관은 고급리무진 장례차가 아닌 소형 장의차에 실려 운구 되었다.
잘 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려 온 삶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피해를 주기 마련이다.
그 명분과는 정 반대의 결과가 기다릴 뿐이다. 이 시대 기독교지도자인 허순길 목사의 장례식을 통해서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값진 것임을 느끼게 된다.